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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rose Jan 06. 2023

8년 차 교사, 질병휴직 시작



 스타벅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샌드위치는 햄치즈루꼴라 샌드위치다. 직원이 따뜻하게 데워주면. 치즈가 녹으면서 담백하니 매력 있는 맛이지만 오늘은 그렇게 맛있지가 않다. 방학을 하고 나면 초반 항상 해왔던 것이 아침 시간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부려보는 것. 늘 방학을 하면, 특히 겨울방학에는 남은 두 달의 시간 동안 어떻게 알차게 쉴까를 고민했다. 학기 중에 받는 매일 같이 일어나는 작고 커다란 사건 사고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 근무하는 하루 내내 소리 지르며 쏟아내는 에너지로 너덜너덜해진 선생님들에게 방학이 없는 삶을 상상해 봤다. 학생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으니(요새는 무서운 세상이라) 서로 날을 세우고 니일 내일 하며 싸우고 헐뜯을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 있을 교무실 환경이 떠오르는 걸 보니 학교에 방학을 제공한 시스템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칭찬받을 만한 부분이다.

 항상 두 달이란 긴 휴가 기간이 있음에도 내가 편히 있을 수 있는 진정한 휴식은  단 2주면 끝이 났다. 방학을 하고 나서 2주 정도가 지나면 생일인데 그때가 지나면 어김없이 심적인 불편함이 느껴졌고 하루하루 날이갈 수록 우울했으며 2월은 날수가 적은 데다 출근일이 며칠 되기에 두 달을 온전히 쉴 수가 없었다.  매번 그랬다.


 올 해는 1년을 쉴 수 있게 되었다. 3달 내내 했던 심리 상담, 동네병원과 대학 병원, 두 군데를 거쳐 마침내 질병휴직을 낼 수 있게 됐다. 9월쯤 한참 힘들었을 때도 내가 병휴직을 낼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증상이 악화되어 학교라는 공간 자체에 발 들이기도 힘들었을 때 비로소 휴직을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괴로움에 비해 병원 진단서를 발급받는 게 쉽지 않았고 눈물 한 트럭과 비용, 시간이 많이 투입이 됐다. 병원을 다니면서도 의사가 정말 진단서를 끊어줄지에 대해 불안해하며 각종 검사도 하고 수 차례 진료를 받았다. 학교 사람들에게 말할 수도 없는 데다 병원 진료 때문에 조퇴를 하는 날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과 약점 잡히는 걸 싫어해서 중간중간 이렇게 까지 눈치 봐가며 병휴직을 내야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긴 했지만 결국 학교 입장보단 내가 먼저였던 것 같다.

 7년 차쯤 되니 앞으로 내가 지내게 될 일터의 모습, 해야 할 일, 변하지 않는 스트레스 요인, 오래 근무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 포기해야 할 것이 회의적으로 다가왔고 미래의 내 모습이 옆에 앉아 있는 선배 교사, 원로교사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느꼈다. 내가 교육공무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부분들과 이 일의 단점들을 저울질하게 되었다. 공무원 연금이란 게 어른들 입에서는 굉장한 메리트인 것처럼 이야기 되지만 사실 내가 교사를 원했던 이유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교사로서의 권위를 누리고 싶었던 것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윤리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걸 상상하진 않았고 승진에도 일절 욕심 없었다. 그저 무시당하지 않고 대접받으며 일하고 싶었던 것인데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만큼 존중받으며 일한다고 느끼진 않는다.(특히 학부모들 때문에) 학생들을 귀감 시키고 바른 인성과 지성에 대해 교육하고자 했던 것도 낭만과 욕심처럼 느껴졌고 내 능력이 부족해 무력감이 들었다.

 특히 여름 방학을 지나 2학기가 힘들었던 이유를 돌이켜보니. 다른 건 별로여도 이번만큼은 착하고 순한 아이들을 만나 평탄할 것 같다 생각했던 담임반 학생들이 2학기에 본모습을 드러내며 미성숙한 언행으로 사고를 치고, 나를 힘들게 하기 시작하고나서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일말의 희망이 점점 사라졌다.

 심리 상담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계신데, 아이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은 초반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잘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본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라고. 아이들은 선생님을 배신한게 아니고 선생님이 순진하신 거라고. 틀린 말 아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성격이 못 되고 남에게 의도적으로 민폐 끼치는 사람을 혐오한다. 그러니 맨날 마주하는 아이들 중 미성숙한 그런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항상 힘들었고 내가 그 아이들을 품기에는 그릇이 작았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잘 다독이고 넘겨주기도 싫었다. 머리로는 마음으로는 혐오스러웠지만 행동은 나이스하게 선생님답게 행동해야 했다.


 교사 일은 완벽한 감정 노동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우울증을 겪으며 힘들어한다. 감정 노동은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행위라는 것을 올해 절감했다. 지금까지는 온갖 경우의 수 를 따지고 그로 인해 유발되는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세게 맞으면서 하나의 불안을 해결한 후 다른 불안을 낳은 다음, 그다음, 그다음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피곤하게 힘들게 살기 싫어졌다. 매일 이어지는 내 한계치 이상의 감정 소모는 나를 병들게 한다. 감정을 어떻게 슬기롭게 다룰 수 있는 지를 배우면서 이 망할 대단한 교사 일을 지속해 나갈지, 내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그와 동시에 일로 삼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일로 새로운 지평을 열지에 대해 올 한 해를 지내볼 생각이다. 휴직을 결심하게 됐을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교사를 그만둘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조금 더 이성적으로 고민해보고 다룰 문제이기에 오랜 시간 인내심을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탐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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