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선열 Nov 24. 2024

생강차를 끓이는 아침

선배의 생강차 

아침마다 생강차를 끓인다.

생강차를 마시기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시작은 선배의 생강 차였다.

차멀미에 시달리는 내 모습을 본 선배가 건네준 생강 차이다

생강을 곱게 갈아 설탕과 꿀에 재어 노란색이 유난히 고왔다

평소에 무심한 듯 보였던 선배의 마음 씀이 따뜻했기 때문일까?


우리 시대 사람들의 마음 표현은 은글슬쩍이다 

자기 PR 시대라 하여 자신을 한껏 드러내는 요즘 사람들과는 달리 

"별것 아닌데요"라던가 "보잘것없지만 '등으로 포장한다

"이건 말이야 한정 상품이야 구하느라 애썼어" 하는 말을 들으면 

말에서 미리 고마운 마음이 상쇄되어 버린다 

"고마워" 하기도 전에 이미 생색이 들어간 식상한 물건이 되고 만다

값의 고하와는 별개 문제이다, 놀라는 것과 감동은 분명 다르다


"그냥 생강 남은 게 좀 있어서 우리 먹을 거 만들다 조금 덜어 왔어요

얼마 안 돼 부끄럽네" 생강차를 내밀며 그녀가 내게 한 말이다


그때 나는 선배의 고단한 일상을 훤히 알고 있었다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  가부장적 남편 수발을 하며 집안 경제를 이끌고 손주까지 돌보는 처지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이었고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은 사탕 한 알도 아껴야 했다

무능한 남편을 떠받드는 그녀가 못마땅하여 나는 은근히 그녀를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하루 종일 직장에 시달리고 집에 가서 집안 살림까지 하면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돈은 언니가 버니까 집안일은 남편분께 맡기세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 계시는 것도 심심하잖아요 집 청소라도 맡기는 게 좋을 텐데"

"무슨, 남자가 집안일을 해요 선빈데···, 요즘엔 좋아하는 약주 먹을 돈도 못 챙겨 놓고 나오는구먼"

사위가 딸을 도와주는 것을 흐뭇하게 이야기하기는 한다  

"우리 딸은 영리해요, 직장도 괜찮고 사위가 적극 도와주거든요, 요샛말로 외조받고 있는 거지요"

딸은 남편의 도움으로 직장 생활을 편하게 한다면서도 본인은 구시대의 잣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편과 딸을 동시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전혀 다르게 대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분명 달가워하지 않는 내 태도를 알고 있으련만 바쁜 가운데 품이 많이 들어가는 생강차를 만든 것이다


"맛있어요, 그런데 생강차 만들기 어려운 거 아니에요?"

"만드는 거 어렵지 않아요, 요즘 생강은 까기가 좀 번거롭지만 생강만 까놓으면 다 된 겁니다'

생강도 언니가 깐 거잖아요, 피곤할 텐데 집에 가면 좀 쉬시지 ···"

"그게 어려우면 살림 어떻게 하겠어요, 주부들이 다하는 일인데"

설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백화점 유기농 코너에서 비싸게 샀어요"라든가

"생강 까느라 손가락에 물집이 생겼어요" 하는 생색내기 말보다 고마웠다

검지에 물집이 생겼고 점심시간에 잠깐 조는 모습도 보면서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게 먹은 선배의 생강 차이다


선배의 생강차 덕분에 생강차가 좋아졌다

새벽마다 생강차 한 잔을 마시는 걸로 하루를 시적 한다

선배처럼 알뜰한 살림 솜씨가 못되니 생강차를 만드느라 몇 번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다

생강을 갈아 꿀에 재웠는데 곰팡이가 피는 경험도 있었다

5년이 지나니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기는 했다

나는 얇게 저민 생강차를 달이는 방법이 좋다 

감초와 계피와 껍질을 정성껏 벗긴 생강을 얇게 편으로 썰어 한약 달이듯 오래 끓인다

약은 정성으로 끓이는 법이라는 옛날 어르신들의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보글보글 생강차 끓어 흐르는 소리도 기분이 좋고 

요즘 같은 겨울에는 김이 나는 생강차 주전자를 보고 있으면 주변에 퍼지는 훈기도 좋다

여름철에도 굳이 생강차를 끓인다 

열대야가 아닌 다음에 새벽 공기는 여느 때보다 조금 차갑기 마련이다 

주변에 서서히 퍼지는 생강 향과 따스한 기운이 좋다 


부러 생색내듯 한 번에 퍼지는 기운이 아니라 서서히 주변에 물들어 가는 기운이다 

 생강차는 커피처럼 강한 향은 아니나 은은하게 의식을 깨운다

알싸한 매운맛이 주는 청량감이다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침 빈속에 커피는 자칫 자극적이다

입에 좋지만 몸에 해로울 수도 있다니 이젠 조심해야 할 때이다

내 건강은 내가 챙겨야 한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기 전 생강차로 위장을 달래 놓는다 


생강차는 몸을 덥게 하여  비장에 좋아 차멀미를 방지할 수 있다

손과 발이 찬 수족 냉증에도 좋은 건강 차이다

꾸준히 생강차를 먹은 덕분인지 얼음장처럼 차던 내 손이 조금 따뜻해졌다 

차멀미도 조금 덜해진 듯하다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생강 향처럼 생강차는 내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선배가 은근슬쩍 내밀어 주던 생강 차이다 


은근슬쩍,

떠들썩한 세상에서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지만 목소리만 크다고 되는 일은 없다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어야 한다.

힘들고 고달팠던 선배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 있어 살만한 세상이다


향기로운 커피가 좋기는 하지만 

커피에게 메인의 자리를 빼앗기는 생강차의 역할도 중요하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생강차에 감사한다 


아침마다 생강차를 끓이며 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주변에 서서히 퍼지는 생강 향과

보글보글 물 끓어오르는 소리, 따스하게 퍼지는 김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좋아하는 커피를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건 덤이다

이제 나는 커피보다 생강차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서서히 주변에 퍼지는 생강 향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주변을 물들일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