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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나 Aug 06. 2024

어떤 일도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

남편의 투자 사기, 억대 빚


2024년 7월 19일 금요일

둘째를 낳고 네 식구가 되어 처음 떠나온 여행이었다. 여수 아쿠아플라넷 구경을 마치고 물회 맛집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펜션에 도착했다. 허기 가져 짐을 다 푸르기도 전에 포장해 온 물회와 전복죽부터 먹기 시작했다. 살면서 먹어본 물회 중 가장 비쌌고, 가장 맛있었다. 연신 만족스럽다는 표현을 하던 중 남편이 내게 긴장된 혹은 뿌듯한, 오묘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남편은 약 1주일 전 나에게 천삼백만 원을 빌려갔다. 새로운 투자를 하고 있는데, 수익이 났다며 금방 쓰고 일주일 만에 돌려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결혼 전부터 주식을 했고, 꾸준히 재테크 책도 읽고 관련 유튜브도 보는 사람이었다. 정말 성실했다. 그래서 나는 운용하고 있던 돈으로만 주식을 할 것이라는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했고, 액수를 비롯하여 그 어떤 것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 표정을 보더니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네" 하며 남편은 본인의 핸드폰을 건넸다. 액정에는 숫자가 쓰여있었지만 단위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결론만 얘기해 달라고 하니 "7억 정도 벌었어"란다. 이 얘기를 듣고 0.1초가량 기쁜 마음이 든 것도 사실. 하지만 바로 '왜? 어떻게? 몇 주 사이에 가능한 일인가?'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아... 이건 아닌 것 같다' 하는 직감.


남편은 번 돈에 대해 세금도 냈는데, 갑자기 돈세탁, 테러자금 등이 의심된다며 미국 모 부처로부터 '보증금을 내야지만 이 돈을 출금할 수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돈을 내야 내 돈을 찾을 수 있다고? 이게 맞는 말인가?' 순간 판단이 안 섰다.


이 기분으로는 물회는커녕 물도 안 넘어가고, 남은 여행을 마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펜션에 입실한 지 30분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나는 집에 가자고 했다. 도저히 여기서는 얘기가 안된다며. 우린 그렇게 약 3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핸드폰 검색을 했다. '거래소 사기' '디센트 금투자' '금투자 사기' '거래소 세금, 보증금' 등 다양한 키워드로...


그래 맞다.

남편은 사기를 당했다.

투자금 총 2억 3천7백만 원

 

집에 돌아와 계속 대화하는 중에도 남편의 말은 조금씩 바뀌었다. 금액도 바뀌었고... 이미 크나큰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투자금 중 1억 2천만 원은 대출을 받았다는 얘기에 나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욕도 나오지 않았다.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대출을 받아 투자라니' 나는 기만당했다. 배신이었다.

 

두 돌도 안된 첫째와 8개월 된 둘째는 이런 상황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더 보챘고, 더 울어댔다. 같이 울고 싶었다. 이미 마음으로는 같이 울고 있었다. 이혼? 죽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관사에 살고 있어 집 한 채 없는데, 우리 것이라곤 차 한 대뿐인데... 봉급쟁이 월급으로 빚도 갚고 아기 둘 양육하며 어찌 살지...?' 막 기기 시작한 둘째,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 첫째... '내 새끼들은 어떡하지...' 절망적이었다.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살면서 한 번도 경찰서에 가본 적 없는 남편과 나

그래 경찰서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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