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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Jul 30. 2021

내게 무해한 사람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10~20대의 이야기들을 쓸 수 있을까.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옮겨올 수 있을까. 무지했고, 서툴렀고, 그래서 그만큼 순수했던 그 시절을. 최은영 작가는 이렇게 해내는구나. 그때의 감정을 철없던 시절로 치부하지 않고, 고스란히 복원시켜 우리 앞에 놓아주었구나. 읽는 내내 나의 그 시절도 같이 들춰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참아야 했던 시간들, 묵묵히 그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나의 어린 시절들, 울음을 안으로 넣어야 했던, 버림받지 않기 위해 버텨야 했던 시간들. 쓸모 글쓰기 때 처음으로 어린 시절을 꺼내서 조심스럽게 쓴 적이 있다. 그때의 내가 낯설었지만 마주하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지만, 그 시절의 내가 아득하여 글로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쓰는 시간들을 통해 나에게 수고했다고, 잘 이겨내서 여기까지 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어두운 방안에 홀로 남았을 나의 어린 시절들. '내게 무해한 사람' 책을 읽고,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쓸 수 있을까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나쁜 어른, 나쁜 작가 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쉽게 말고 어렵게, 편하게 말고 불편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작가의 말 중



+ 그 여름


둘의 사랑이 풋풋하고 예뻐서, 무서웠을까. 남들에게 들킬까봐. 사람을 꼭 남,여로 나누고 사랑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배웠던 수많은 시간들. 수많은 책들, 그런 말들이 시시해졌다. 사랑하는 감정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거,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 우리가 나눠놓은 이분법에 갇혀 어떤 사람들을 궁지로 모는, 무지한 사람들. 


+ 모래로 지은 집


특히 제일 좋았던 단편 소설. 

공무, 모래, 나비의 이야기. 책을 읽는 그 시간만큼은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친구로 몰래 그들을 엿보았다. 우린 모두 너무나 다르게 살아왔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건 쉽지 않다. 십대부터 이십대초반까지의 친구들. 우린 어렵게 속내를 꺼내고 또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받곤 했다. 그 시절은 우리들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를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런데 여전히 참고 있어. 선미야. 무엇을? 많은 것들을. 인간에게 기대하는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참고 그러는 것 같아.



피지 못할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자신들 삶의 모순을 또박또박 말하는 건 잔인한 짓이 될 테니. 그 시간들을 거치지 않은 인간으로서 그런 비판을 파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을 테니까.



아무렇지 않게 서른 살의 허들을 넘고 원래 그 나이로 살아온 사람처럼 능청을 떨게 될 것도, 최승자의 시집을 읽으며 간신히 버티던 스물셋의 가을 같은 건 어린 날의 유약한 감상이었다고 과거의 나를 평하게 되리라는 것도 몰랐다.


+ 손길 



그들은 삼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혜인이 아는 한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 삼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었으니깐.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


+ 아치디에서 



그 사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 처음에는 환자들의 말도 잘 들어주고 좋은 표정도 지으려고 애를 썼지. 그런데 오랜 시간 삼교대로 일을 하고, 그것도 너무 많은 일을...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블록 하나가 빠진 거야. 아주 작은 블록이었는데 그게 빠져버리니까 중요한 부분이 무너진 거지. 근데 본인은 자기가 엉망이된 것도 모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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