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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푸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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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 Apr 01. 2022

매일매일

푸른 파장 #3

매일 아침 화장실 한 뼘짜리 창으로 계절을 엿봅니다. 오늘은 일광(日光)을 쬐고 있는 나뭇잎을 마주합니다. 옅고 여린 초록 잎을 낸 나무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빛은 직선으로 창문을 통과합니다. 어둠 속 화장실엔 하나의 빛줄기가 선명하게 줄을 긋습니다. 공기 중 부양하던 작은 입자의 먼지들이 일제히 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합니다. 숨어지내던 것들의 민낯을 마주합니다. 그 한 줄기 빛 속으로 손을 통과시켜봅니다. 잡히지 않는 것들 속을 유영합니다. 매일 아침 화장실 창문을 통해 계절을 봅니다. 흐리구나. 비가 올 것 같구나. 오늘은 좀 덥겠구나.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는 것. 햇빛의 채도는 매일 다르다는 것. 욕실 창문 옆 곰팡이가 며칠 전보다 분포도가 넓어졌습니다. 곰팡이 세제를 들어 벽에 분사합니다. 희미한 락스향이 욕실을 순간 가득 채웁니다.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는 화장실의 곰팡이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 지워진 그 자리에 언제고 다시 그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오늘은 5월 초이지만 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가 초여름 날씨일 거라고 라디오에서 작게 속삭입니다. 라디오를 끄고 정원영의 CD를 꺼내 음악을 틉니다. 그 앨범 속 5월이라는 곡을 좋아합니다. 반복을 걸어놓은 뒤 봉지 커피를 뜯어 컵에 가루를 넣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희미하지만 뚜렷한 커피향이 즉각 주변을 감쌉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습니다. 


그리고 어제 저녁 정리해놓은 방을 둘러봅니다. 매일 쓸고 닦는 집. 바쁘다는 이유로 방치되어 있을 땐 낡고 오래된 이 동네와 꼭 닮아 있던 집. 깔끔한 집으로 이사 가면 이 더러움이 한 번에 해결될 거라는 이상한 믿음. 그런 생각 속에 집을 방치하며 산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엄마, 어떤 집이든 그녀가 들어가면 새집이 되었던 기억이 어느 날 떠올랐습니다. 그게 단칸방이든 오래된 집이든 그녀는 매일 집을 쓸고 닦고 아침이면 환기를 시키고 이불을 털었습니다. 주방의 물기 하나, 욕실의 곰팡이 하나 없이 그녀는 그렇게 매일 청소했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집을 깨끗이 유지하는 건 나의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집에 먼지가 부옇게 쌓이고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나의 정신 또한 같은 방황을 합니다. 매일 저녁 하나의 의식처럼 방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습니다.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빨래를 돌립니다. 그렇게 치워진 방 한가운데 놓인 책상에 앉아 하루를 정리합니다. 


아직 집을 온전히 깨끗이 유지하는 건 꽤 힘들지만 매일 조금씩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몰아서 하지 않기, 몸에 습관을 들이기, 보일 때 치우기. 더불어 나의 정신 또한 매일매일 돌보기, 방치하지 않기. 삶이란 어떤 한 부분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깨닫고 있습니다. 나의 건강, 정신, 집을 매일 살피고 관리해야 된다는 것을. 오늘도 청소를 합니다. 



* 독립출판물로 출간된 [푸른 파장]을 연재합니다. 

*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인용 시, 표기부탁드립니다.  

* 책 구매 링크: https://linktr.ee/wow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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