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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Mar 03. 2024

3년 만에 간 코노

코시국이 한창일 때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상실감은 다름 아닌 코노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왠지 기분이 센티해질 때면 코노에 자주 가곤 했다. 작은 방에 앉아 에코 빵빵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주었고 그 시간만큼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코노는 코로나 때문에 한 동안 매우 위험한 시설로 치부되었다.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고 다니던 시절에 노래방에 간다는 건 N번째 확진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나 역시 한동안 코노에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코노에 가지 못한 날이 늘어갈수록 일종의 금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혼자 운전하는 차 안에서 유튜브로 노래방 반주 영상 틀어놓고 미친놈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한 것일 뿐,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노래방이 주는 감성은 재현이 불가능했다. 코로나 예방 접종도 했으니 한번 가볼까 했지만, 쫄보인 나는 100% 확신할 수 없었다. 더구나 백신 맞아도 걸리는 건 똑같다는 이야기가 이미 돌고 있을 때였다.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코로나에 한 번 걸렸다 낫는 것뿐이었다. 한번 걸렸던 사람은 비록 몇 달이지만 재감염의 위험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때부터 기다렸다. 어차피 걸릴 코로나, 최대한 빨리 걸리고 안 아프게 지나가 주기를.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개인위생에 각별히 신경을 쓰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주변 사람들이 다 한 번씩 걸렸음에도 멀쩡하다니. 그러다 결국 작년 겨울, 거의 끝물이 되어서야 코로나가 나를 찾아왔다.


  몇 주후, 나는 슈퍼 면역이 생겨 당당히 코노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양재역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시간이 어정쩡하게 좀 떴다. 카페 들러서 커피를 마시기에는 늦은 시간, 먹자골목에 있는 코노를 발견하고 홀리듯 걸어 들어갔다.


  익숙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지하의 쿰쿰한 냄새와 함께 어우러지는 노래방 특유의 냄새가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근데, 너무 갑작스레 들어온 나머지 내가 현금이 없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아쉬움에 돌아서려는데 무려 카드결제가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비싸다. 천 원에 두 곡. 맙소사. 아무리 양재 노른자 땅에 위치해 있고 카드가라고 하지만 가격이 너무하다. 천 원에 세곡 미만으로는 불러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돌아서면 후회할 것 같았기에 눈 딱 감고 마이크 덮개를 챙겨 방에 들어갔다. 


  총 6곡을 불렀다. 너무 오랜만에 혼코노라서 처음 세곡은 나도 못 들어줄 정도로 엉망이었다. 중간에 끄고 싶었으나 돈이 아까워 억지로 끝까지 불렀다. 그래도 네 번째 곡부터는 목이 좀 풀렸는지 제법 흥이 났다.


  코노를 너무 오랜만에 가서일까? 흥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철저하게 자기 객관화가 아닌 주관화에 빠지고 말았다. 마지막 곡을 해서는 안 될 노래를 예약하고 말았다. 박효신의 야. 생. 화. 를!


  아무리 혼자 부르는 노래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그걸 넘어버린 것이다. 이제 옆방에서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와 강제로 정지 버튼을 눌러버려도 할 말이 없다. 아, 몰라 야생화가 안 되면 잡초라도 피워보자. 


  갓효신 형님은 야생화 꽃을 아름답게 피워 흩어 날리시던데, 내가 부른 야생화는 싹도 제대로 못 내고 썩어 버리고 말았다. 대신 멘탈이 산산이 부서져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누가 올까 봐 황급히 정지 버튼을 누르고 빛의 속도로 방을 탈출했다. 


  본의 아니게 방탈출 게임을 하기는 했지만, 삼 년 만에 코노에서 노래를 부르니 속이 다 후련했다. 피가 끓어오르는 걸 보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우리 동네 코노는 내가 접수한다. 야생화만 빼고.







*사진출처: Photo by Zoran Borojevic on Unsplash, 유튜브 TJ노래방 "야생화"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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