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랜드 스포일러 리뷰
만약 죽은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다면 어떨까? 그것도 음성이 아닌 고화질의 영상통화로 말이다. 전화를 받을 뿐 아니라, 언제든지 보고 싶으면 전화를 걸면 된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원더랜드'의 내용이다. 원더랜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회사의 이름이자 그곳에서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를 뜻한다. AI기술을 활용해 죽은 사람 혹은 의식 불명 상태에 있는 사람을 생생하게 화면으로 복원해 준다. 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죽은 사람이라도 마치 어딘가 살아있는 것처럼, 영상 통화를 통해 언제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 두 사람은 원더랜드 서비스를 설계하고 운영하고 있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 영화에는 총 5명의 배우가 주연급으로 등장한다. 탕웨이와 공유(특별출연), 수지와 박보검, 정유미와 최우식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작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정유미와 최우식은 그들만의 이야기도 있지만 원더랜드를 운영하는 주체로 각각의 스토리들 가운데 공통분모의 역할을 해준다.
등장인물들은 원더랜드 서비스를 통해 돌아가신 부모님과 대화하기도 하고, 코마 상태에 있는 애인과 알콩달콩 사랑을 속삭이기도 한다. 생전의 데이터를 활용해 구축한 것이기에 사용자가 느끼는 이질감은 거의 없다.
▲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하고 싶지만 남자는 먼 우주 정거장에 있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죽거나 의식이 없는 이들은 서비스가 구동될 때 아주 먼 곳에 가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이를테면 지구 반대편의 사막 한가운데나 우주 정거장 같은 곳 말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려는 일종의 장치인 듯했다. 특히 죽음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서 있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아주 유용해 보였다.
죽은 자의 죽음을 잊고 계속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결국에는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들을 위한 맞춤 서비스이다. 망자가 살아있을 때 제공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현된 서비스라서 가능한 것으로 연출된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는 대체적으로 원더랜드 서비스에 무척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매일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는 아이는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현실에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언제든지 단말기 화면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남겨진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화면 속에 나오는 망자들은 자신들이 사랑한 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짜 그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이용자들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지만, 세세한 감정선까지 100% 똑같이 죽은 사람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더구나 의식이 없었던 사람이 기적처럼 살아나면서 AI와 실제 사람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원더랜드 서비스'를 해지하거나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말이다. 내린 선택은 정반대지만, 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만큼은 동일해 보였다. 소중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그것이다.
▲ 특별출연한 배우 공유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를 보고 나니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원더랜드 서비스'와 같은 기술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늘 예고 없이 어느 누구에게든 찾아온다. 영원할 것 같은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도 늘 마지막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어느 정도는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과거의 가수를 AI로 되살려 내는 시도들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뭉클했던 것은 3년 전에 보았던 터틀맨(그룹 거북이의 리더)의 영상이다.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모습을 구현하여 완전체 거북이의 무대를 볼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 AI기술로 재현된 (고)터틀맨과 함께 완전체가 된 그룹 거북이 ⓒ MnetTV 유튜브 갈무리
앞으로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서 AI기술이 활용되게 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 AI기술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윤리적인 문제를 비롯해 보이스 피싱 등으로 악용될 소지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큰 파도가 되어서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피할 수 없다면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인류에게 거침없이 몰아칠 거대한 파도 앞에 삼켜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관련된 제도나 법제정이 필요한 때다. 더 나아가 AI기술이 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예방책들 역시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 ⓒ 언스플래쉬
AI 기술이 인류에게 선물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온전히 우리 손에 달려있다. 사람을 더 닮기 위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담담하고 의연하게 인간다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들 또한 아직 곁에 있음에 감사하자. AI가 빅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과 추억으로 더 열심히 오늘 하루를 새겨나가야 할 것이다. 원더랜드는 어딘가에 있는 것도 가상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나, 너, 우리가 함께 숨 쉬고 있는 지금, 바로 이곳이 진정한 원더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