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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Oct 16. 2024

영화 '전,란' 제목에 쉼표를 찍은 이유

<넷플릭스 영화> '전,란' 스포일러 리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전, 란>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사극 영화다. 화려한 검술 액션이 영화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세련된 연출 덕분에 정통 사극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쉽게 즐길 수 있을 듯하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한몫한다. 주연인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배우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대단하고 캐릭터의 개성도 잘 살렸다.


  몰입감을 주는 초반을 지나 영화 속 백성들의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다 보면 이미 겪어 매우 익숙한, 불편한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장면은 전쟁이 종식된 후 양반들의 모습이었다. 당시 왜군에 부역했던 양반 가문은 큰 타격 없이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의병활동에 힘쓴 민초들은 전쟁통에 죽거나 가족을 잃는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도 폐허 속에서 먹을 것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피폐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당시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대조되는 두 장면을 보고 있으니 일제 강점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일제 강점기 친일세력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등지고 왜군에 협조했던 일명 '부왜' 세력이 존재했다. 친일파보다 덜 알려졌을 뿐, 포털사이트에서 '부왜'를 검색하면 역사에 기록된 그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두 명의 주인공이 분노에 차 검을 휘두르는 장면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천민 신분의 천영(강동원)은 의병이 되어 왜군을 베고, 양반인 이종려(박정민)는 임금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백성을 벤다. 이 두 장면을 교차 편집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지배층의 어리석음과 피지배층의 울분을 대조해 보여주고 있었다.





  검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검을 쥔 자의 욕망을 나타낸다. 마땅히 백성들을 지켜줘야 할 권력층의 칼끝이 도리어 백성을 향하고 있는 모순. 그리고 그들의 칼끝을 뒤로한 채, 앞장서 왜적을 물리치고 있는 백성들. 권력층의 그릇된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왜군에 저항하는 백성들도 모두 고상한 의도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지는 않는다. 감독은 평민 이하의 계급들에게도 그들이 쫓는 각각의 욕망이 있음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계급 제도에 대한 불만이 바로 그것이다. 천민에서 벗어나 평민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 터져 나오는 그들의 한이 깃든 칼날에는 서슬퍼런 분노도 함께 담겨 있었다.


  중요한 건, 욕망의 우선순위가 아닐까 싶다. 지배층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가 우선이었던 반면, 피지배층은 나라를 지키는 공을 세워 면천을 얻고자 했다. 왜적을 물리친 평민 이하의 민초들이 가지고 있던 의도 역시 아주 선하기만 했다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개인의 욕망을 먼저 앞세우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당시의 권력층보다는 훨씬 낫다고 볼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계급의 최고층이라 할 수 있는 왕 선조는 민심을 돌보기는커녕 폐허가 된 경복궁 재건에만 목을 맨다. 권력의 정점에 선 자의 관심이 백성이 아닌 자기 권력 지키기에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은 불쾌할 정도로 익숙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러한 패턴은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분제도는 오래전에 폐지됐고 현재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에게 속해 있다. 겉으로는 몇몇 정치인들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국민이 가진 권력을 잠시 그들에게 일임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고 그로 인한 갈등 역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대의민주주의라는 명분 아래, 현실의 우리 사회는 권력층과 피권력층으로 나눠져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모습을 보자.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 힘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권력을 사유화해 국민을 향해 휘두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그들의 손에 힘을 쥐여준 이유는 옛 민초들이 지배층에 기대했던 것과 같다. 우선적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그 힘을 사용해 달라는 뜻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권력의 칼날이 국민을 향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영화의 제목을 자세히 보자. '전란'이 아니고 '전,란'으로 전과 란을 구분해 써냈다. 영문 제목도 반란이라는 뜻의 'Uprising'으로 표기하고 있다. 외부의 침입으로 인한 전쟁보다 내부의 백성들이 일으킨 난에 더 무게를 둔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겪게 될 위기는 밖이 아닌 안으로부터 기인할 때 훨씬 더 치명적이다.


  영화 <전, 란>은 탁월한 인물 간의 갈등 묘사, 흠잡을 데 없는 배우들의 연기, 시원시원한 액션신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어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더불어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해 보다 보면 일제 강점기는 물론이거니와 지금의 현실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진리에 가깝지 않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꽤나 큰 묵직한 무게를 가진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향해 예리한 칼날을 세워 겨누면서 말한다. 가벼운 액션영화로만 보지 말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라고 말이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굳이 제목에 쉼표를 찍어 둔 것은 아닐까.





*사진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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