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떠난 여행으로부터 알게 된 점이 있다. 나는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 생각해 보니 20대 때 무궁화호와 KTX를 탈 일이 꽤 많았는데 약 4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나는 '지루하다'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 없다. 기억 속에 있던 취향을 다시 발굴해 낸 것과 더불어, 나는 유럽을 여행할 때 기차로 국경을 넘는 경험을 좋아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국경을 넘으면 즉시 한국 정부로부터 안전재난문자가 오는데 그 순간 '아, 나 지금 룩셈부르크에 와 있구나.', '아, 나 지금 프랑스로 넘어가는 독일의 한 기차역에 와 있구나'라는 것들이 생생히 실감 나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독일에서 프라하로 넘어갈 생각이다. 인 아웃만 프랑크푸르트를 통해서만 하는, 사실 진짜 목적은 동유럽의 대표 국가인 프라하인 그런 여행인데 사실 나는 지금 선택의 경로에 놓여 있고 그 선택 중에 가장 알맞은 선택을 하기 위해, 여행 전부터 고군분투 중이다.
우선 독일행 비행기를 끊어두고 '자, 이번 여행에는 어디를 다녀오면 좋을까'하고 유럽 지도를 살펴보았다. 독일과 인접해 있는 여러 개의 나라 중,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지만, 지금까지 서유럽만 경험해 봤으니 이번에는 동유럽에 가고 싶어 졌고 프라하를 목적지로 정했다. 분명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기에 지난 유럽 여행 때 내가 파리에서 룩셈부르크까지 가는 정도의 시간, 그러니까 대충 2~3시간 내외로 걸리겠구나 싶었는데. 아뿔싸.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기차로 7~8시간이나 걸릴 줄이야.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혹은 장거리 연애 상대였던 전 남자 친구를 만나러 지방에 내려갈 때. 특히 장거리 연애를 하며 기차를 많이 타보긴 했지만 최대가 4시간이었다. 4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약 8시간의 여정은 처음이다. 거기다 나는 여행자이지 않은가. 여행자에게는 시간과 체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특히 체력은 필수다.
독일에서 프라하까지, 직항 기차가 꽤 있긴 하지만 1회 경유를 해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러면 환승하러 가는 고생을 조금 더 해야 한다는 뜻인데.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다시 기차에 타고,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을 발휘해 캐리어 도난 방지를 위한 자물쇠로 기둥과 캐리어 연결도 꼼꼼히 해둬야 하고. 흐음...
나는 왕복 4시간에 걸쳐 대학과 본가를 왔다 갔다 하고 수업 끝나면 용돈벌이를 위해 과외를 하러 가고 과외를 끝내고 집에 왔을 때 과제까지 해야 하는, 심지어 2시간밖에 못 자고 일어나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에 체력 걱정 없이 오를 수 있는 그런 20대가 아니다. 30대의 나는 심히 고민 중이다. 프라하-프랑크푸르트까지 기차를 타고 왕복 약 15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지를 고를 것인가.
또 다른 선택지는 비행기다. 어차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을 할 테니 공항 근처의 호텔을 잡아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 또한 피로감으로 작용할 테니) 그곳에서 피로를 풀고 다음 날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프라하로 넘어가는 방법도 있다.
현재 마음이 향하는 곳은 각각 1개씩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갈 때는 기차, 돌아올 때는 비행기 이런 식으로. 그런데 어떤 것을 타고 가든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지 않을까? 기차 바깥 풍경을 실컷 구경하다, 이내 책을 꺼내 읽을 수도 있다. 챙겨간 책을 다 읽고도 시간이 남으면 다시 책의 앞장으로 돌아가면 된다.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어도 좋으니까.
그리고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다. 저가 항공 아니면 루프트한자의 비행기를 이용하게 될 텐데, 만약 저가 항공 티켓이 있다면 인생 처음으로 야외 탑승이라는 걸 해볼 수도 있다. 프라하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역시나 독일어가 가장 많이 나올까? 소심한 사람 구경을 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터.
30대의 여행에는 '여유'가 크게 깃들어 있다. 기차와 비행기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주어진 상황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같은 게 나에게는 있다. 이 상황에서 나를 가장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여행을 통해 알아갈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