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독일 기차에서 살아남기 (+예약 꿀팁)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 여성이 운영하는 유튜브로 해외에서 일하며 사랑과 커리어를 모두 잡은 사람의 브이로그 및 토크/정보성 채널이다. 한국의 입시 시스템을 잘 밟아 국내 4년제 대학을 진학, 졸업한 그녀는 석사 학위를 위해 독일로 떠났다. 졸업 후 독일 내 대기업에 입사했고 현재는 영국인 남편과 결혼 후, 영국 지사로 발령받아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만든 콘텐츠 중, 독일의 생활/문화와 관련한 토크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때 그녀가 말하길, 독일 사람들도 혀를 내두르는 것이 바로 독일의 기차 시스템이라고 했다. n시간 전까지만 멀쩡하던 티켓이 한순간에 줄줄이 취소되는 건 물론, 탑승을 완료했는데 갑자기 플랫폼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프라하행 독일 기차를 예매해 둔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스레드에 (요즘 새롭게 뜨고 있는 이 SNS는 해외여행/문화와 관련한 글들이 넘쳐 난다) 이게 정말인지 문의할 겸 게시물을 올렸다. '정말로 독일 기차가 그렇게 악명이 높아?' 내가 쓴 글은 꽤 많은 관심을 받았고 독일의 기차 시스템에 크게 데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주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현재 기준, 약 138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이 138개의 댓글 중 '나는 정상적으로 독일 기차를 이용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10명이 안 된다.
지금까지 전해 들은 독일 기차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탄 기차가 정시에 출발할까? -> 이것은 운이다
2. 내가 탄 기차가 정신에 도착할까? -> 이 역시 운이다
3. 내가 탄 기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스탭이 와서 내리라고 하면 내려야 한다 (그게 목적지가 아니어도, 심지어 시골길의 들판이어도)
4. 내가 탄 기차의 플랫폼이 갑자기 바뀌는 것? 이 정도는 독일 기차에서 별일 아닌 일이다
5. 무슨 일이 언제/어떻게 있을지 모르니 그냥 운에 맡겨라
6. 마음을 비워라
7. 이후에 일정이 있다면 포기할 각오를 하고 타라
8. 플랜 B를 만들어 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천해 준 플랜 B는 플릭스 버스다. 버스와 기차, 둘 다 예약을 해두고 문제가 없는 것을 이용하라는 것. 물론 몇만 원, 혹은 몇십만 원의 돈이 날아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는 게 여행자로서는 더 끔찍한 일. 그래서 지금은 플랜 B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다. 왜 아직 '생각' 단계에 머물러 있냐고 묻는다면 플릭스 버스의 시스템 또한 기차 시스템 못지않게 엉망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하나의 선택지를 더 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돈이 오가는 것이다 보니 다소 신중해진다.
스레드에 댓글이 달릴 때마다 심란한 표정이 되어가던 중, 꽤 흥미로운 댓글 하나가 달렸다. 어떻게 보면 독일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굉장한 꿀팁이 될 수 있을 만한 것 같아서 공유해 보려 한다. 악명 높은 독일 기차에서 살아남는 법. 정시에 출/도착하는 독일 기차 티켓을 구하고 싶다면 바로 가장 이른 기차를 예매해 볼 것. 첫 기차는 정시 출발/도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는, 몇몇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였다. 정말 의외의 꿀팁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는 사실 알고 있다. 좋은 경험을 한 사람보다 나쁜 경험을 한 사람의 말의 목청이 더 크다는 것을. 독일 기차에서 불편함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리는 이유는 좋은 경험을 한 사람은 '좋은 경험'이라는 기억 속에서 침묵하지만 불편함을 겪은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작년, 파리 여행을 갔을 때 파업이 일상인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나는 단 한 번의 지연, 취소 없이 파리 동역의 기차를 잘 이용하고 다녔다. 어떻게 보면 '기차 행운 요정'이 깃든 것이다. 그 요정이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와 주면 좋겠지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은 약간 지연돼도 괜찮으니 제발 프라하에만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참 소소하지만 대대(大大)한 바람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