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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Wave Jun 16. 2021

팀장님 그건 아니죠!! 을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사내 제보 폭발, 우리도 밟으면 꿈틀꿈틀

블라인드(BLIND)의 등장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BLIND)’ 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최근 들어 회사마다 익명 제보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블라인드’라는 앱이 있다.

블라인드는 작성자의 익명을 전제로 한 소셜네트워킹 플랫폼으로, 직장인들이 고충을 토로하거나 회사 내부의 부정비리를 폭로하는 장으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동안 개인 신상털이에 대한 두려움, 지목될 경우 예상되는 각종 불이익에 대한 걱정으로 움츠려 있던 민심(?)이 익명의 공간에서 대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내부적으로 묻히거나 쉬쉬하며 지나갔을 일들도, 이제는 일단 블라인드 바람을 타면 급속도로 확산되고 공론화된다.   

블라인드가 단숨에 직장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마도 작성자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기업들이 지워달라고 해도 저희는 할 수도 없고 해준 적도 없습니다. 글 쓴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저희 내부에도 없고 누군가 저희 데이터 베이스를 통째로 가져가도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구조입니다. 평문으로 저장해 놓은 이메일 주소도 없고, 익명성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 내에 비밀번호 찾기 기능도 제공하지 않습니다”(팀블라인드 대표 인터뷰 중)


블라인드의 사용방법은 아주 심플하다.

익명으로 글을 쓰고 싶으면 앱에 접속한 후 카테고리(회사, 업계 라운지, 토픽 등)를 선택하여 글을 작성하면 끝이다. 익명이 철저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신원이 노출될 우려가 없고, 이용자도 많아 일단 글을 올리면 순식간에 내용이 공유된다. 그리고 내용의 경중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이슈화될 경우 회사의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그 영향력 또한 막강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블라인드를 바라보는 회사의 시각도 크게 변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아니 뭔 그런 글 하나 올라온 거 가지고 호들갑이야. 일이나 해 일!” 이라고 얘기했던 회사의 어르신들이 이제는 제보 내용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암암리에 비공식적으로 블라인드 글을 모니터링하는 부서나 임원이 있고, 일부 기업은 제보자를 색출하려다 역풍을 당하기도 한다.


사내 제보채널 활성화

제보가 비단 블라인드와 같은 외부 익명앱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제보 활동이 이루어진다. 외부 망을 통해 회사 일이 불거지는 것에 부담을 느낀 많은 기업들이 내부적인 제보 창구를 적극 홍보하고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일부 기업은 법적 요건인 고충처리 담당자를 사내에 지정하여 활발한 제보를 유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담당자를 통해 직원들로부터 각종 고충을 듣고, 주기적으로 관련 사항을 경영층에 보고하며 자체적인 정화 활동을 추진하는 것이다(물론 형식적인 경우가 다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기업들은 외부의 전문기관과 위탁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직원들은 일단 회사를 못 믿는다. 아무리 삐까뻔쩍한 말로 포장을 하고 살살 구슬려도 이상하게 인사부서나 고충처리 담당자에게는 말하기 꺼려진다.

회사의 부조리, 상사의 갑질에 대해 내부적으로 얘기하면, 결과적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말을 꺼낸 사람만 피해를 보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담당자에게는 회사가 너어무 좋다고 얘기한 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블라인드를 켠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회사 내부 일들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관리는 하고 싶은데, 직원들이 회사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관련된 회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위에서 얘기한 대로 제보 채널을 외부에 의뢰하는 방식이다.

점점 많은 기업들이 외부 위탁형 제보 채널을 운영하며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경우 제보할 내용이 있는 직원은 회사와 계약된 별도의 제보 기관에 직접 글을 적을 수 있고(앱 활용, 홈페이지 배너 설치 등), 제보 내용은 전문업체를 통해 별도로 조사된다. 과거와 비교해 나름 객관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무지 애는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직원들의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놈들 어떻게든 찾아낼 것이다!!”)


을들의 반란, 부당함에 대한 저항

제보 내용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부당함에 대하여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회사에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상사의 갑질, 부서 간 갑질, 회식 강요, 사내 성희롱, 업무상 횡령, 기타 규정 위반 등등 대부분의 제보는 명확한 이유가 있고 공정하지 못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조금 주목해야 하는 점은, 과거에는 참고 넘어가거나 당연시되었던 부분들 지금은 제보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상황을 보면 일부 직원들이 아직도 조금 착각아닌 착각(?)을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떤 제보의 당사자로 지목됐을 때, 피제보인들(주로 조직장 또는 고참)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예전에는 이래도 괜찮았어! 이게 무슨 문제야?


일부의 인식이긴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실무자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야근과 헌신을 강요했다. 그리고 “일을 이딴 식으로 밖에 못해?” 등의 폭언은 하루에도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환경이었고, 야근 뒤에는 원치 않는 회식이 이어졌다. 당시에는 직장인들이 이런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문제 삼지 않았기에 (혹은 그때도 바뀌는 게 없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의 신입사원들, 넓게 보면 MZ세대는 과거 당연시했던 기성세대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근무 시간 중 조직장이 폭언을 하거나 술자리에서 강권을 한다면 바로 그 조직장은 제보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유들로 인해 최근 조직장 및 선임 직원들의 부당한 리더십에 대한 제보가 공식적/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많이 접수되고 있는 상황이다.


비겁한 변명이십니다!

위의 사례를 조금 더 확장해 보면, 각종 제보가 들어올 경우 회사 감사부서는 일단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우선 Data를 분석하고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일 경우 제보와 관련된 내용을 알고 있을 만한 사람들과 인터뷰를 실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피제보자의 입장 혹은 소명을 듣는 절차를 가진다.

피제보자는 보통 조직장급 레벨이나 고참직원들이 다수인데 인터뷰를 시작하면 거의 대부분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1. "정말 그럴 의도는 없었어요"

-  업무를 진행하며 훈육 차원에서 조금 강하게 얘기한 사실은 있지만 나쁜 의도나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한다.


2. "기억이 안 나는데요?"

- 대화 과정에 욕과 같은 특정한 단어가 사용됐거나 회식 자리에서 폭행이 있었을 경우,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은 보통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3. "문제가 될지 몰랐어요"

- 제보의 대상이 된 직원들은 대부분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10년 20년 전의 환경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지금 기준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시되는  것인지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사실관계가 인정될 경우, 몰랐다 하더라도 잘못된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내부감사에 있어 최근의 트렌드는 가해자의 의도 보다는 피해자가 느낀 감정과 피해 정도에 중심을 둔다는 것이다. 피제보자의 부적절한 언행이 조사 과정에서 어느 정도 확인이 된다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보자 입장에서 후속 논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점은 기성세대 직장인 중 일부는 아직도 옛날 생각과 기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과거보다 조심하고 눈치 보는 경우가 더 많긴 하다).

그리고 다음에 다루겠지만, 이러한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는 생각보다 많은 회사에서 세대 갈등 혹은 조직문화 관점의 갈등으로 노출되고 있

(관련 이슈를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현안이자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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