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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Aug 28. 2023

따지는 아들 VS. 떼쓰는 딸

fun fun한 가족을 경영한다

"아들! 라면 물이 왜 이리 많아?"


"550ml야"


"뭐라고? 그걸 어떻게 알아?"


"정수기로 받으면 되지. 왼쪽 버튼 누르면 550ml 나오잖아.


"......  냄비 뚜껑 닫아. 그래야 물이 빨리 끓지"


"안 돼, 550ml는 뚜껑 안 닫았을 때 기준이야. 열어 놓고 끓여야 물이 졸으면서 딱 맞게 된다고 했어"


"......"


띵하다.


30년 넘게 라면을 끓여 온 나는 단 한 번도 물의 양을 잰 적이 없다. 정수기 550ml 버튼이 라면 물의 양인 줄도 모르고 살았으니. 정수기가 있어도 싱크대 수전 아래 냄비를 놓고 흐르는 물을 보고 있다가 '느낌'이 올 때 멈춘다. 감으로 끓여도 아내와 아이들은 라면이 맛있다고 나를 칭찬한다. 풍미를 더하려면 파를 '듬성듬성' 몇 조각 잘라 넣고 식초를 '대충' 삼분의 일 술 붓고, 끓고 있는 '중간쯤' 계란을 탁 털어 넣으면 된다. 젓가락으로 살살 라면을 돌리다 보면 불을 언제 끌지 감이 온다.


사실 라면 맛은 분식집 아주머니가 최고다. 주문이 쉴 새 없이 들어오는데 뭔 조리법이랴. 물의 양을 비커로 재고, 조리 시간에 맞추기 위해 시계를 쳐다볼 겨를도 없다. 그런데도 십 분 내로 먹음직한 라면을 뚝딱 내놓는다. 오랫동안 수없이 반복해서 쌓인 내공의 결과다. 아무리 그럴듯한 조리법도 아주머니 손맛을 당하지 못한다.


때문에 칼로 두부 자르듯 라면을 끓이려는 아들이 딱하기도 웃기기도 한다.


"아들~ 아빠 물 한잔 갖다 줄래?"라고 물으면 "몇 밀리미터 줘?"라고 되묻을 녀석이다. 아이고 머리야.


언젠가 아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들, 영어가 좋아 수학이 좋아"


"수학이 낫지, 딱딱 끊어지고 답이 분명하니까"


똑같은 뱃속에서 나왔지만 딸은 아들과 다르다.


수학이 약한 딸은 학교에서 '반올림'이라는 수학 보충반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방과 후에 남아 씨름했다. 말이 좋아 '반올림'이지, 이른바 성적 하위권 몇 명을 추려서 선생님이 따로 봐주는 프로그램이다. 영어는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다 하고.


안타깝게도, 이리저리 따지며 분석하면 놓치는 게 많다.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걸 찾아먹는 딸과 다르게, 아들은 부르기 전에는 인기척이 없다. 먹을 걸 줘야 먹고, 안 주면 안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꼽시계가 울리면 당장 내려와야 하는데, 간식 먹을 시간과 저녁 시간을 따지고 앉아으니 말이다.


딸은 협상에 능하다. 보챔과 울음으로 감정선을 건드리는 건 기본이다. 어이없는 건, 해줄 걸 먼저 던져놓고 조건을 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토요일에 마라탕 먹으러 어디로 갈 거야?"


"이 신발 중에 어떤 거 사줄 거야?"


마라탕을 먹을지도, 신발을 사줄지조차 아직 결정도 안 했는데, 자기가 먼저 선을 넘어 던진다. <협상의 법칙>을 읽었을 리가 없을 텐데, 딸은 이런 수를 잘 부린다. 별생각 없이 응했다가는 딸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한 게 여러 번이다.


돈에 대한 관념도 아들과 딸은 다르다.


용돈을 받기 위해 저녁 설거지를 해야 한다면서 아들이 먼저 나선다. 노동과 수고가 있어야 돈이 생긴다는 걸 안다. 설거지 한 번에 1,000원, 일주일 연속하면 프리미엄이 붙어 10,000원을 쳐서 준다.


딸은 가불을 요구한다. 먼저 돈을 주면 설거지를 하겠단다. 그러면서 정작 설거지를 며칠 하다 만다. 눈뜨고 당한 꼴이다.


실속으로 따지면, 딸이 아들 머리 위에 있다. 그런데 감성적이고 분석적이거나, 내성적이고 외향적인 건 어찌 보면 상대적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 가사도 있듯이 사람은 맥락과 역할에 따라 새로운 가면을 쓴다. 1학기에 반장이었던 아들도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오해를 사기 싫어 따지는 걸 자제한다고 스스로 말했다. 자잘한 일들은 본인 기준에서 답답하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면서.


딸도 집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광견처럼 엄마에게 달려들지만, 담임 선생님 말로는 친구들에게 양보도 잘하고 예의 바른 사슴 학생이란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 살기 어렵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걸 아는지 사람들은 자신을 감춘다. 때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러한 다양한 성향과 감추는 모습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한 이유이다.


동물원에 사자만 으르렁거리면 아무도 찾지 않는다. 기린과 원숭이, 타조와 호랑이, 코끼리와 사슴도 같이 있어야 아이들이 좋아한다. 조직 내 임시 프로젝트팀에도 엔지니어와 미술학도, 경영학도와 철학도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한다. 자신의 전공분야에만 매몰되면 놓치는 게 많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산속에서 나와야 비로소 산이 보이는 법이다.


나와 아내, 남매의 성향을 합해보니 '대환장 파티'이다. 치고받고 티격태격, 울고 웃고 질질 깔깔. 이 얼마나 다채롭고 즐거운 일인가. 팔도 잡놈의 집합체인 회사만 경영의 대상이 아니다. 가족도 경영이다. 나는 오늘도 아내와 함께  독특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들을 이끌고 나아간다.


fun fun한 경영은 바로 가족에서부터다.


© itfeelslikefilm,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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