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가게가 몇 년 새 여기저기 생기더니 이제 탕후루가 대세다. 올봄 유원지에서 처음 봤었는데 동네에도 하나둘씩 늘어난다. 약속이나 한 듯 같은건물에 '마라탕후루'집이 들어선 곳도 있다.
냉장고를 텅장고로 만들어버리는 딸 덕분(?)에 마라탕을 마지못해 먹는 일이 잦다. 집에서 해 먹거나 밖에서 사 먹거나 일주일에 두세 번꼴이다. 아내는 여러 가지 채소를 강제로라도 먹는 게 어디냐며 그러려니 하지만, 고기만 쏙 골라 먹는 애들이 썩곱지 않다. 그런데 골칫거리가 생겼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간다고, 먹고 나오자마자 딸은 탕후루를 사달라고 졸라댄다. 탕후루는 딱 봐도 설탕 범벅이다. 제아무리 과일을 꽂아놔도 눈 속임일뿐,한 꼬치 다 먹으면 사탕 한 봉지를 털어 넣는 셈이다.
여러모로 아이러니다. 십 대는 그렇다 쳐도 중국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큰 이삼십 대가 마라탕과 탕후루의 주요 소비자라니! 한중 관계가 최악을 달리고 교류도수년간 끊겼지만 음식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가 보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마라탕이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 거라고 보았다. 맛과 독특함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대만 음료 브랜드인 공차(貢茶)나 마라탕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은 구상을 할 정도였다. 물론 도전 정신이 종지 그릇 크기밖에 안 되고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해서 머릿속 생각으로 그쳤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마라탕후루가 무섭게 퍼지고 있다.
내가 마라탕을 처음 먹어본 건 2004년 9월이었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중국 하얼빈공업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한 첫 학기 두 번째 주 어느 날, 중국정치경제론 반 대학원 학우들은 유일한 외국 유학생인 내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였다. 반이라야 열 명이 채 안 돼 한 주가 지났을 뿐인데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먼저 내민 손길은 무척이나 고마웠다.
하얼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빙등제의 도시답게 혹독한 겨울 추위로 유명한 도시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 기차에서 내리는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국내외 관광객도 적지 않아 하얼빈 곳곳은 식당 천국이었다. 학교 주변도 번화함은 뒤지지 않았다.
식당에 자리를 잡자마자 애들이 진열대로 간다. 살면서 사진과 방송에서도 못 본 식재료들이 가득하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책으로만 중국을 배웠을 뿐 정작 현지 음식에는 문외한인 나였다. 어디인들 먹고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겠는가? 멍한 나를 보며 친구들이 하나하나 알려준다. 바이차이, 요우차이, 깐떠우푸, 뿌쥬, 미시엔, 샹차이, 양로우. 따샤, 무알, 찐전구....
문화충격으로 멍해있는 나를 보고 학우들은 깔깔 웃으며 맥주를 권했다. 그 유명한 '하피'(하얼빈 맥주의 약칭)다. 나는 그때까지 칭다오 맥주만 들어봤을 뿐 마셔본 적은 없었다. 한국 편의점이나 식당에서도 파는 곳이 없었다. 하피자랑이 일장 이어진다. 맥주는 냉장고에서 막 꺼낸 청량감 있는 목 넘김이 특징이지만 미지근한 하얼빈 맥주 맛도 일품이었다.
하얼빈 맥주를 국내 식당에서 마실 수 있다니. 문화체험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즐거운 추억으로 이어진다.
역시 나는 '본투비 중국 적응자'이었나 보다. 큰 그릇에 짬뽕처럼 가득 담겨 나온 양고기와 채소들이 입에 맞았다. 무엇보다 톡 쏘는 알싸한 마라 맛! 난생처음 맛본 독특한 맛! 화장품 냄새가 나는 채소인 샹차이만 가릴 뿐이지 모든 재료가 맛있었다. 와구와구 먹어치우는 내가 신기했는지 친구들은 연거푸 맥주를 따라댄다. 분위기가 고조된 우리들은 부어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양꼬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맥주 한 병이 3위안(우리 돈 600원), 양꼬치 한 줄이 1위안(우리 돈 200원) 남짓이다. 그 후부터 마라탕은 주식이, 양꼬치와 하피는 간식이 되었다. 소수민족뿐만 아니라 유학생도 많았던 하얼빈공업대학은 그에 걸맞게 식당 메뉴도 다양했다. 점심과 저녁은 학교 식당에서 때우고, 가끔씩 날을 잡아 중국어 중급 연수반 녀석들끼리 삼삼오오 양꼬치와하피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었다. 며칠 굶은 놈들처럼 달려들어 아무리 마시고 뜯어먹어도 만 원이 채 안 나왔다.
그 해 12월쯤이었나. 썸을 타던 상해재경대학 휴학생인 콩루와 교정을 걷던 중, 삼륜차를 끌고 온 아주머니가 긴 꼬챙이에 새빨간 자두 같은 과일을 꽂아 놓고 파는 걸 보았다. 콩루에 물어보니 탕후루(糖葫芦)라고 한다. 과일은 샨쟈(山査, Berry류에 속하는 중국 토속 과일)라고 한다. 샨쟈를 꼬챙이에 하나하나 끼우더니 설탕물을 묻힌 붓을 쓱쓱 문질렀다. 냉장고가 필요 없었다.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간 추위 때문에 탕후루에 바른 설탕물은 바로 얼었다. 대학 교내를 거닐다 보면 돗자리위에아이스크림을 늘어놓고 파는 광경도 흔한 때였다. 가격은한 꼬치에 우리 돈 400원. 아쉽게도 탕후루는 마라탕만큼 맛이 없었다. 샨쟈의 시큼한 맛이 단맛을 압도하였다. 신맛을 싫어하는 내겐 그 한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국에서 파는 마라탕과 탕후루는 '원조'의 맛과 다르다. 모양도 같지 않다. 그렇다고 마라탕과 탕후루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마라탕후루 또한 여전히 마라탕후루이다. 정확히는 한국화 된 마라탕후루이겠다.
굳이 따지자면 중국 원조 마라탕은 마라(麻辣) 맛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정통 마 맛이다. 반면에 한국의 마라탕은 신라면(辛辣面)의 매운맛이다. 아주 순한 맛부터 아주 매운맛까지있다. 한편 중국 탕후루에는 샨쟈만 꽂힌다. 우리나라 탕후루에는 딸기, 파인애플, 샤인 머스켓. 망고 등 다양한 과일들이 쓰인다. 해외 원서도 국내 출판사와 번역자가 다르면 읽는 맛이 달라지는 이치다.
그렇다고 중국 원조 마라탕보다 우리 마라탕이 못한가?다양한 과일로 만드는 우리나라 탕후루가 샨자 하나만 꽂는 중국 탕후루보다 훨씬 좋은 먹을거리인가? 절대 아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맛과 개성이 있다. 다를 뿐이다.
나는 한국에서 중국의 '원조' 마라 맛을 맛본 적이 없다. 한국은 그저 신라 맛일 뿐이다. 중국 쓰촨 지역의 전통 마라탕의 마라 맛을 소화할만한 우리 한국사람은 많이 없을 듯하다. 탕 맛도 이럴진대, 먹고 싶은 채소는 더 갖다 넣고 입에 맞지 않는 채소를 진열대에서 빼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한국에는 한국인에, 중국에는 중국인의 입에 맞는 맛이 있을 뿐이다.
국가는 '상상의 공동체'이다. 사람들을 주권과 국경이라는 물리적 틀 안에 넣어놓는 정치 체계일 뿐이다. 국가보다 중요한 건 바로 민족과 그 민족을 살찌우는 문화이다. 언어, 음식, 의복, 놀이 등이 모두 문화의 모습이다. 민족은 바로 이러한 문화를 나누고 경험으로 체화한 정신 공동체이다.
민족은 살아온 방식이 다르다. 한국과 중국이라고 음식 문화가 같겠는가? 우리의 신라면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듯 마라탕후루가 지금 우리 문화에 침투하고 있다. 대만의 티음료인 공차도 일찍이 우리나라에 자리 잡았다. 유럽 사람들의 고급 디저트라는 마카롱도 수년간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과다한 당분에 대한 염려 때문인지 '뚱카롱'이라 불리며 찬밥 신세가 되었다. 그 자리를 탕후루가 헤집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뚱카롱만큼 설탕 범벅인 탕후루가 앞으로 얼마나 선전할지 모르겠다. 먹고 버린 꼬챙이와 종이컵 처리 문제로 벌써부터 몸살을 앓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