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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정원 파란 Apr 16. 2023

제주 사람 허계생

이추룩헌 세상도 이시카

“난이 진짜 하늘이 안부러워라. 이추룩한 세상도 이시카“

제주 조천 송당에서 태어난 허계생은 어려서 선흘로 '폴려' 간다. 술도 담배도 안 먹는 순한 사람이란다. 어멍은 못보내겠다며 그저 울었지만, 몸뗑이만 와도 막 좋단다. 결혼 날 새서방은 술 먹고 사라지고, 다 잠든 뒤 부엌 앞 마룻바닥에 쓰러져 있더란다. 그루후젠 매냥 술 먹언 이기지도 못하고 문 부수고. 귀하게 자란 영택은 술주정뱅이 ‘광질다리’였다. 그런 영택이 지네 아방 죽은 뒤 어느 날, ‘나 주젠 고길 솖았다는 거라.’ 긴 시간이지만 허계생은 서방까지 ‘날 생각해 고기를 삶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경허난 나가 나를 칭찬한다.’


제주 조천 송당과 선흘의 허계생

그럴 만하다.

<제주 사람 허계생>의 목차를 보면서 대강의 ‘한 사람 생활사’를 알아 차렸다. 한 사람은 허계생이지만, 한 사람은 한 시대의 송당과 선흘이다. 한 사람은 쉐와 도새기며, 메밀과 유채, 감귤이며, 농업노동요다. 시대의 아픔인 4ㆍ3이고, 당대의 오롯한 제주다. 이추룩헌 세상, 참으로 아프고 아름답게 사셨으니 칭찬할 만하고, 하늘이 부럽지 않다.     


<제주 사람 허계생>은 고광민 선생의 가르침 <제주 생활사>를 닮았다.


그런데, 글을 쓴 ‘한 사람’ 이혜영은 누굴까. 책날개 한 켠에 유추해볼만한 몇 가지 단어는 있다. 1972년 생, 부산과 서울, <작은것이 아름답다>, 생태와 평화, 글쓰기, 우연히 선흘마을.

  

‘한 사람’ 말에 천착한 ‘한 사람’의 글 <제주 사람 허계생>을 말하듯 읽었다.


‘우연히’ 제주에 와서 우연히 선흘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런 글을 듣고 쓸 수 있을까. 책 첫 장을 넘기며 놀람은 더욱 쌓였다. 한 사람 허계생을 통해 제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한 시대를 통찰하다니. 제주 사람도 아닌데 제주어를 이추룩 정리하다니. 선흘과 송당을 오가며, 알밤오름, 거문오름, 당오름을 오르며, 제주 어르신과 벗이 되어 듣고 말하고 쓴 ‘한 사람’ 이혜영이란 존재. 한 사람 이혜영의 손과 발, 마음으로 ‘한 사람 생활사’를 읽는다. 이혜영을 통해 선흘과 송당, 허계생과 제주의 ‘삶’을 본다.


제주 서귀포 문섬, 실해송과 분홍바다맨드라미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혼을 담아라”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는 나에게 ‘거대하게’ 깨어있고 분별하고 통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늘 아닌 바닥에, 추상 아닌 구체적 삶에, 국가 대신 한 송이 꽃을 보라 말한다. 그곳이 거대한 삶이라고.


그대가 추앙하는 국가는 민초의 삶에서 건설되고, 교회의 십자가는 무너진 설악과 성산에 있고, 천국의 이데아는 길바닥에 버려진 개의 상처에, 박물관의 역사적 유물은 ‘한 사람’의 진솔한 생활에서 비롯된다. 그러기에 제주의 역사는 삶의 바닥을 살아가는 한 사람 허계생, 또 한 사람 이웃 허계생의 구체적 모습에 있다. 그 가르침을 한 사람 이혜영이 나에게 알려준다.


인천 볼음도의 800년 된 은행나무

  

함덕 바다를 보고 선흘마을 동백상회에서 커피를 사 동백동산 먼물깍에 간 적이 있다. 큰 길따라 훅 하니 지나친 길. 이제는 ‘한 사람’의 가르침에 따라 선흘의 올레를 걸어 허계생의 집으로 소리하며 천천히 가려 한다. 이혜영처럼.

"이추룩헌 것도 삶이라 경 된 거 달마."


남쪽바다에서 본 서귀포 섶섬과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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