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휴일을 지금 봐도 재미있을까?
70년 전 작품이기에 많은 분들이 봤을 테니, 처음부터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얼마 전, 1954년에 제작된 흑백영화 '로마의 휴일'을 다시 봤습니다
무려 70년 전 작품이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경쾌하고 즐겁습니다.
예전에 봤던 영화였기에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보는 데도 소위 재미있는
영화를 표현할 때는 쓰는 '관객의 멱살을 잡고 가는' 몰입감이 최고인 영화입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궁중 생활이 지겨워진 공주가 뛰쳐나와 벌이는 일탈의 즐거움,
사랑, 약간의 모험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스릴러나 서스펜스도 아닌, 일종의 코미디와 사랑이야기임에도 앞서 언급했듯이 관객의
멱살을 잡고 가는 몰입감을 주는 이유는 주인공이 공주이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공주라는 존재와 벌어지는 꿈같은 로맨스이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로망이 가득한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도 민간인과 결혼하는 왕자, 공주가 있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낮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1950년대는 공주의 영상은
커녕 사진마저 보기 어려운 시대였으니,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였을 거예요.)
공주의 상대역인 기자는 궁중을 뛰쳐나온 공주를 이용해 특종을 터트리려 하지만,
공주가 일탈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로마의 휴일'이라는 제목을 보면 공주가 로마에서 휴식 같은 일탈의 즐거움이 영화
중심인 것 같지만, 사실상 기자의 판타지가 채워져 가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기자가 홀로 쓸쓸하게 돌아서는 장면이 먹먹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로마의 휴일'은 바라볼 수밖에 없거나, 꿈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판타지가 마치
실현된 것처럼 보였기에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영화는 마지막까지 관객이 판타지를 내려놓지 않게 연출이 되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의 두 주인공은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서로를 모르는 상대처럼 마주 보게 하여, 관객을 안타깝게 만들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판타지를 정말 끝까지 끌고 갑니다. 공주가 기자단을 만나면서 잠깐잠깐 노출되는
감정의 표현은 관객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면서, 판타지는 더욱 완벽해집니다.
그러고 난 뒤, 공주는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혼자 덩그러니 남은 기자에게서
영화는 공주에 대한 판타지를 앗아가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포인트는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공주'라는 판타지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예전에는 공주라는 이미지는 신비롭고, 화사하고 아름다운 존재의 대명사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김자옥 같은 이상한 공주부터, 피오나와 같은 못 생긴
공주가 등장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다양하게 해석된 공주가 나오면서 이젠
공주의 신비롭고 우아한 아름다운 이미지는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훌륭한 작품이고,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2024년에 이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이 있다면, 과연 1954년에 극장에서 봤던 관객이 느낀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로마의 휴일'은 작품성보다는 흥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1950년대 사람들의 정서와 시대분위기를 더욱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것으로
보여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이 본다면 1950년대 사람들처럼 재미있게 볼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오드리 헵번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미모는 지금 봐도 감탄스러울
지경이라 영화에 몰입하는 데는 꽤 큰 도움이 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