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다짐했다. 내가 사라졌을 때 슬퍼할 사람을 더 이상 만들지 말자고. 원래도 사람을 대할 때 거리를 두는 편이라 아주 친한 친구에게조차 힘든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주로 들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입장이기에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일은 드물다.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는 지인은 모두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와준 이들이다. 그래서 내사람을 늘리지 않는 게 편하고 쉬웠다.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외로움도 없었다.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적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일할 땐 친분을 유지한 채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면 업무 외 서로에게 기대하는 게 없어 관계가 심플해진다. 다행히 내 사회성을 사교성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조용히 천천히 잊히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구도 예상 못한 고양이 집사가 됐다. 보호자로서 고양이의 평생을 책임지려면 최소한 15년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된 아기 고양이를 처음 만난 날 내 미래는 50~60대까지 연장됐다.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절로 삶의 의욕이 솟구쳤다.
5년째 다니는 미용실의 헤어디자이너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고양이라는 동물에 애정을 키워오고 있었기에 미용실에 갈 때마다 고양이 관련 질문을 하곤 했다. 한 번도 반려동물을 기른 적이 없어 집사는 꿈도 안 꿨다.
2년 전 여름, 헤어디자이너가 갓 태어난 고양이를 구조했다며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미용실 앞에서 먹이를 주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어미가 많이 아파서 탯줄도 못 땐 채 생후 이틀 만에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제일 먼저 입양 의사를 물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일단 거절을 했지만 심장이 뛸 만큼 고민이 됐다.
시간이 날 때마다 EBS ‘고양이를 부탁해’와 수의사들의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며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했다. 영상만 보고 자신하면 안 되지만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달 정도 지나 헤어디자이너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묘연인지 아직 한 마리는 입양처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당장 미용실로 달려가 고양이의 실물을 봤다. 무척 귀엽고 신비로워서 한 시간 넘게 들여다봤다.
동생과 함께 미용실에서 2주를 더 지낸 뒤 우리집으로 온 하루. 헤어디자이너가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고양이의 엄마가 된다는 게 어색하다며 호칭을 망설인 내가 이젠 하루에게 성까지 붙여 자식처럼 부른다. 하루로 인해 하루하루 웃을 일이 늘어났고 시나브로 밝은 기운을 찾게 됐다. 평생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데려온 동물이 메마른 감정을 살리고 포기한 행복을 누리게 해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일에만 빠져 살다가 현실적인 미래설계를 하게 된 것도 하루 덕분이다. 이제 나는 어느날 문득 사라져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생후 한 달 반부터 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하루가 나 없이 홀로 남겨졌을 때를 생각하면 끔찍하다. 절대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하루와 같이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좋아서 오래오래 이 고양이와 잘 살고 싶어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됐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기자 일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직 안의 그 일이 아니라도 할 게 많았다. ‘남 좋은 일 말고 나 좋은 일’ 하며 득이 되는 직업도 분명 있다. 적절한 시기에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게 해준 고맙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내 반려묘 하루를 위해 나는 오늘도 희망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