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 음식사 '로'
통장에 돈은 없고, 고기는 양껏 먹고 싶은 날 찾는 무한리필 고깃집.
단돈 2만원 정도에 지갑 사정 걱정 없이, 흐름 끊김 없이, 위장이 허락하는 한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1~2천원을 투자해 공기밥까지 추가 주문하면 노릇노릇 잘 익은 고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스페셜 볶음밥까지 탄생하니 이름바 갓성비 맛집이다.
그 날 저녁, 나는 이런 기대를 하고 무한리필 삼겹살 집에 들어갔다.
사실, 별로 같이 밥 먹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금요일 저녁에 배고픈데 같이 밥 먹고 가면 안되냐는 사람에게 매정하게 ‘싫은데요!’ 할 성격이 못되어서 어물쩡 어물쩡 저녁을 같이 먹게됬다.
그는 월급날이 얼마 안 남아 돈이 별로 없다며 무한리필 고깃집을 저녁 메뉴로 제안했고, 고기는 없어서 못 먹는 나이기에 흔쾌히 좋아요!를 외쳤다.
메뉴를 보니 초벌삼겹살, 돼지갈비, 돼지껍데기, 치킨스테이크를 11,900원에 무한리필로 먹을 수 있었다. 역시 혜자롭다. 메뉴별로 고기를 하나씩 가져왔다. 지글지글 불판 위에서 아름답게 익어가는 고기들의 모습에 행복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기를 종류별로 한 접시 씩 맛 본 그는 여기 고기 질이 너무 별로라며 괜히 왔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 그러면 여기서 그만 먹고, 다른 거 먹으러 갈까요?’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11,900원이나 냈으니 그만큼은 먹고 가야한다고 대답했다. 뭐. 틀린말은 아니니까. 그럼 그러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여기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한 걸 그날 밤 두고두고 후회했다. 지금도 후회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공기밥, 콜라 등을 서빙해주고 계시던 아주머니를 불러 불판을 갈아달라고 했다. 그 집 불판은 돌판이었다. 나는 속으로 불판이 돌판인집도 판을 갈아주나?라는 의문을 가졌다. 아주머니는 테이블에 있는 휴지로 불판을 닦아서 고기를 새로 구우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아. 역시 안갈아주시는구나. 그럼 그냥 구워먹어야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별안간 그가 목소리를 높이며 아주머니에게 짜증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게 말이되는 소리냐며 어떻게 휴지로 불판을 닦냐며 당장 불판을 갈아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굉장히 난처해 하시며 휴지가 좀 그러면 키친타올로 닦아드리면 되겠냐고 물으셨다. 그는 아 됐다고 무슨 가게가 이딴식이냐며 아주머니에게 거친 소리를 이어갔다. 나는 귀가 발갛게 달아오름을 느끼며 ‘괜찮아요!ㅎㅎㅎ 여기 휴지로 닦으면 되죠? 감사합니다!’하고 아주머니께 서둘러 대답했다.
그 이후, 그는 이 집은 그래도 그나마 삽겹살이 먹어줄 만 하다며 삼겹살을 추가로 가져왔다. 집에 가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그래도 같은 팀 사람인데, 동네 주민인데 참아보자 싶었다. 참아서는 안 됐다.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그 순간의 나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치고 싶다.
어느정도 익은 삼겹살을 자르던 그는 ‘아 가위가 왜 이렇게 안들어.’를 시작으로 ‘삼겹살이 너무 질기네.’ ‘지방이 너무많네.’하며 연신 불평을 쏟아내더니 기어코 또 아주머니를 불렀다. 삼겹살이 질이 너무 안 좋다며 고기를 이런식으로 내놓으시면 어쩌냐고 이야기 했다. 심지어 우리 자리는 고기를 썰어 주시던 주방 바로 앞자리였다. 아. 귀를 넘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후로도 그는 아주머니를 서너번은 더 불렀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올해 최악의 저녁식사 1위다. 그는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어떠한 기대를 한 걸까.
부모님이 가게를 하셔서 그런지 나는 식당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유독 견딜 수 없다. 우리 엄마께 누가 저렇게 대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속에서 부글부글 용암이 끓어오르는 기분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나에게 그 하나는 식당에서,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께 어떻게 대하는 지다. 솔직한 것과 무례한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