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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조금 더 풀어 보면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정도가 될 거 같기도 하다. 이 의문을 본격적으로 풀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난 얼마 전에 가을이니 책을 좀 읽자는 이야기를 썼었다. 그냥 쓴 것도 아니고 최근에 끝난 지역 도서관에서 진행한 책 읽는 이벤트를 본인이 직접 참여하고 있음을 예로 들면서 까지 책을 읽자는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이번 글은 그와 상반된 책을 왜 읽어야 하는 건지 혹은 책을 꼭 읽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건지 하는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사실 결론부터 말하면 책을 왜 읽는지, 꼭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책을 제대로 읽어 보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점을 밝힌다. 나는 과외교사다.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래저래 근 15년 정도를 가르치고 있다. 초반엔 초등생도 많이 가르쳤으나 지금은 중고등생만 가르치고 있다. 책 읽는 이야기를 하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과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공부 허세’가 있는 친구들이 있다. 상당히 많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거다.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소위 레벨 테스트 같은 걸 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중간 정도 수준의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럼 많은 친구들은 자기 수준에 맞게 중간 수준부터 아니면 조금 불안한 경우는 그보다 조금 더 아래 단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간혹 아니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자기 수준보다 높은 단계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중간 수준의 문제도 겨우 풀면서 이왕 공부 시작하는 거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시면 되니까 보다 어렵고 수준 높은 문제를 풀기를 바라는 경우다.
일견 맞는 말인 거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자기 수준에 맞는 그러니까 쉽게 혹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풀 수 있는 수준의 문제들을 풀면서 어느 정도 공부 근력을 키우고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이 해도 될까 말까 한 게 수학이다. 수학 실력과 성적은 들인 노력과 시간에 정비례해서 절대 늘지 않는다. 정체기와 성장기가 반복된다. 일정기간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들인 시간과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제자리걸음을 보이는 정체기가 더 길다. 이런 부분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수학을 포기하는데 그게 바로 함정이다.
그러니까 안에 물이 어느 정도 차오르는지 모르는 물 컵을 밖에서 보는 심정이랄까? 컵에 분명히 물이 들어가긴 하는데 그래서 물이 차긴 차는 거 같은데 컵이 불투명하고 시선을 위로 가져갈 수 없어 도대체 언제 물이 차올라 넘칠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분명한 건 물은 붓고 있고 붓는 만큼 분명히 차오르고 있고 언젠가는 넘쳐흐를 거라는 거다. 그때, 넘쳐흐르는 그때 수학 실력은 갑자기 튀어 오른다. 그리고 그다음 물 컵에 또 물을 채우는 식이다. 이런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건너 띄고 누군가가 채워 줘서 넘친 물을 바로 마시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하는 느낌 혹은 기분을 내려고 그럴 듯 해 보이는 그러니까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어려운 교재를 본다거나 문제를 푸는 경우다. 다시 말해 자기 수준에 맞는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약간은 쉽게 혹은 조금만 생각하면 풀 수 있는 문제를 10개, 20개 풀어 완벽하게 체득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어려운 문제 하나를 진심의 미간을 찌푸리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뭐 엄청난 걸 기록한다는 듯이 필기를 하는 그런 과정 자체에 빠져 나 공부하고 있어요 하고 착각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거다.
선행 학습도 마찬가지다. 난 가끔 아니 자주 선행을 원하는 학생들과 부모들을 보면 정말 솔직히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감히 니 주제에?’ 본 학년의 응용이나 활용문제도 아닌 기본 문제조차 100%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주제에 도대체 왜 무슨 자신감으로 선행을 원한단 말인가? 정말 선행을 할 수 있는, 해도 되는 친구들이 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본 학년의 그 어떤 문제를 들이대도 완벽하게 풀어내는 친구들은 선행을 해도 된다. 그런데 선행을 원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격하게 표현하겠다, ‘같잖게’ 본 학년 내용을 겨우 이해하는 수준이 태반이다. 지금 먹고 있는 것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면서 저기 보이는 수박 겉이라도 미리 핥아 보겠다는 심산인데... 수박 겉을 핥아 봐야 남아 있는 농약과 흙먼지를 빨아먹는 수준 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행 진도를 나가 달라느니 평소엔 다음 학년 걸 봐주고 시험기간엔 본 학년 걸 봐 달라는 둥... 아주 그냥 난리 부르스를 춘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공부 허세가 있는 친구들, 괜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오~ 이 녀석 어려운 문제 푸는구나 혹은 선행하는구나 이런 반응‘만’ 갈구하는 친구들치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친구들 특징이 불만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기 딴에는 한다고 하는데(그 방법이 상당히 잘못됐음에도) 뭐가 안 나오니 불만을 갖는 게 한편으론 이해가 될 정도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 거랑 똑같은 거다. 아반떼 정도 사서 끌면 딱 맞는 사람이 그래도 차는 쏘나타나 그랜저는 타야지 하는 경우 혹은 돈 몇 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준수한 가방 정도 쓸 수 있는 사람이 그래도 가방은 명품 들어줘야지 하는 경우와 아주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딱 다리가 찢어지는 격이다.
자, 이제 책 읽는 이야기로 돌아와서 책을 읽는 것도 마찬 가지다. 자기 수준에 맞는 잘 읽히는 책을 읽으면 되는데 누가 읽었다고, 베스트셀러라고, 이 정도는 읽어 줘야 한다고... 뭐 여러 이유로 자기와 맞지도 않는 책을, 무슨 내용인지 이해도 못하면서 그저 허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자인데 그나마 우리 한글이니 읽을 수는 있으니 일단 읽어 보자 하는 글자‘만’ 읽는 행위 자체에 빠져 책을 읽는 ‘독서 허세’에 빠져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베스트셀러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업계에서 만들어 내는 베스트셀러도 많지만)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고 해서 나도 읽어야 한다는 당위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돼묻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이런 인식도 문제다. 너 그 책 읽어 봤어? 해서 아니 안 읽어 봤는데 이러면 에이~ 현대인이, 문화인이! 그 정도 책은 읽어야지 하는 경우다. 책은 결과적으로 우리 인간이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일과 이야기를 기록한 것들이다. 분야도 다양하고 주제도 다양한데 여하튼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록한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기록을 읽으면서 간접 경험을 통해 분명히 삶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도움을 받는 거지 전적으로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거다. 내가 지금 당장 먹고사는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하등 필요 없는 이야기라면 그거 읽을 시간에 당장 돈이 되는 일 한 시간을 더 하는 게 스스로와 가족에게 이득이 된다면 안 읽어도 된다. 즉, 책을 읽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 한 권 정도 안 읽으면 어떻게 되는 것처럼 스테디셀러 한 권 정도 집에 없으면 뭔가 무식한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가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게 문제라는 거다. 더 나아가 백번 양보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정말 읽는지 모르겠지만 사 모으는 건 좋은데 수준에 맞는 책을, 스스로가 잘 읽을 수 있고 머리와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의 책을 좀 읽었으면 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읽기만 하면 뭔가 세상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책은 실제 했던 이야기건 가상의 이야기건 가장 괜찮은 꽤 재미있는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의미와 감동 혹은 지식 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읽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분명 삶을 꽤 괜찮게 사는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느낌만 받는 게 문제다. 나 역시 한 때 자기 개발서를 많이 읽었다. 읽는 순간 당장 내가 성공을 할 거 같은 황홀한 경험을 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결국 내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거나 실천하지 않으면 그저 한낮의 꿈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충분히 느끼고 어차피 실천하지도 않을 이야기 괜히 읽으면서 환상에 빠지면 뭐 하나 싶어 언제부턴가 자기 개발서를 읽지 않고 있다. 그거 읽을 시간에 오늘 당장 내가 해야 될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게 삶에 더 도움이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책은 읽어야 한다. 단 조건이 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닌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읽었을 때 잘 읽히는 책, 다루는 주제나 소재와 상관없이 내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그래서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책. 다 읽고 시간이 지났음에도 문득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다시 펴 보는 책, 펴 보는 순간 순식간에 몇 페이지를 그냥 읽어 내려가는 책 등을 읽으면 된다. 아 물론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그리고 지인들이 추천하는 책을 읽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런 정보와 추천을 통해 읽을 만한 책을 찾는 건 상당히 좋은 방법이다. 다만 그런 책들을 굳이 다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도 분명 기호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읽는 책은 모두가 필수적으로 읽고 보고 때로는 참고해야 하는 교과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재미있고 의미 있고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내용의 책이 나에겐 별 내용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그 책을 그렇게 의미 있게 생각하는 사람의 잘못도 전혀 관심 없는 나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그 책이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맞는, 내 수준에 맞는 책을 잘 찾아 읽었으면 한다. 딱히 수준에 맞는 책을 못 찾았다면 책을 굳이 안 읽어도 된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책이라는 건 결국 우리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나 역시 사람이지 않은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돌아보는 것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바라보는 것도 그리고 앞으로 올 삶을 예상해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불어 영상시대다.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꼭 책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드라마나 영화도 괜찮고 유튜브도 괜찮다. 책을 통해서만 삶의 좋은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오만이다. 물론 다른 매체보다 책이 보다 정제된 내용을 담고 있어 덜 자극적인 부분이 있기에 소화시키기에 좋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매체가 책에 비해 별로거나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책이건 뭐건 간에 매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내용을 볼 것이다. 내용이 좋다면 매체가 책이건 영상이건 문제 될 게 전혀 없다. 그러니까 취미가 뭐예요? 하는 질문에 ‘독서’라는 대답은 이제 좀 사라져야 된다고 본다.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있어 보이니까 독서라는 대답을 많이 하는데 어디 독서가 그리 만만한가?
만만하지 않은 내용의 책을 만만한 양 들이대고 읽으면 만만한 사람이 될 것이고 만만한 책을 만만하면서 재미있게 그리고 신나게 읽으면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이다. 누가 정했는지도 모르는 ‘양서’를 읽으려 애쓰지 말고 재미있는 책을 쉽게 읽히는 책을 읽으면 좋겠다. 그런 책이 없다면 안 읽어도 그만이다. 책은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다. 똥오줌을 싸는 것처럼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똥오줌을 싸는 게 더 중요하다. 책은 안 읽어도 그만이지만 똥오줌을 안 싸게 되면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죽을 수도 있다. 책은 어디 그런가? 안 읽으면 죽나? 아! 한국 사람들은 책을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기는 할 텐데 돈은 가시야 뽑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