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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었다.

by 이야기하는 늑대

https://groro.co.kr/story/16721



찢어진 잎이 그 자체로 본모습인 꺼뭉이는 찢어진 잎이 나오는 순간이 아름답지만 찢어지면 안 되는 손을 쓰고 있는 인간인 나의 손이 찢어진 건 수습을 해야 했다. 찢어진 날 바로 병원에 가서 상처를 꿰맸다. 꼭 반드시 꿰매야 할 상처인지는 더 따져 봐야 하겠지만 의사가 보자마자 바로 꿰매기 시작한 걸 보면 거의 반드시 꿰매야 하는 상처임에는 분명했다. 그렇게 꿰매고 나서 이틀에 한 번 병원에 드레싱을 다시 하러 갔다. 드레싱을 하는 걸 볼 때마다 이거 이 정도면 그냥 집에서 내가 갈아도 되겠는데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다만 약을 처방받아야 했기 때문에 군소리 없이 병원에 격일 근무하듯이 출근했다.



사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곱게 들으며 열심히 병원에 출근한 이유는 또 따로 있긴 했다. 11월 15일에 아내 언니 집에 놀러 가서 아이들을 위해 동물원에도 가고 어른들을 위해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술도 한 잔 하기로 했는데 갑작스럽게 손을 다치고 꿰매기까지 해서 빨리 나아야 했다. 더욱이 병원에 처음 간 날, 그러니까 손가락이 찢어지고 찾아 가 바로 꿰맨 그날 의사 선생님이 3주 간 술은 안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다녔다. 다친 날 이후로 2주 뒤에 언니 집에 가기로 한 건데 3주 간 술을 마시지 말라니... 안 될 일이었다.



해서 열심히 출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처 빨리 아물라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구운 계란도 판으로 사서 먹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확고한 목표나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거 같다. 그렇게 2주가 지났고 어제 드디어 실밥을 다 풀었다. 그리고 오늘 언니 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있느냐고 한다면 또 그렇진 않다... 그 와중에 딸아이가 기관지염으로 아프기 시작해 주말을 제외하고 2주 간 유치원에 겨우 3일만 갈 정도로 집에서 쉬면서 열심히 약을 먹어야 했다. 물리적인 시간상 원래 계획대로 15일 전에는 나을 거 같긴 했는데 낫고 바로 외부로 나다니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다음 주로 미루기로 했다.



결과론적으로 의사 선생님의 첫 처방의 일환인 술은 3주 뒤에나 마시라는 조언은 거의 예언이나 다름없었다. 빨리 나아야 한다고 그래야 술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고 구운 계란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보낸 날들이 다소 허탈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그래 무리하지 않고 이제 실밥을 풀었고 내일 일요일부턴 물이 닿아도 된다고 하니 깔끔하게 일주일간 마무리 수습 잘하고 다음 주 토요일에 어쩔 수 없이 흉터는 남겠지만 그 손으로 운전하면서 한껏 가벼워진 아이를 바라보며 놀러 가서 신나게 놀고 마시면 될 거 같다.

아 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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