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바나나 먹기 싫다고

by 프롬서툰

집에 가고 싶다.


아,
오늘 망쳤네.



지난 연휴에 출근을 했더니 부서장 방에 불이 켜져 있더군요.


에이, 설마.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슬쩍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안녕하세요. 주말에 웬일로 나오셨어요?



보고 싶지 않았던 그 얼굴.



네, 부서장이 출근해있더군요.



아, 정리할 게 좀 있어서. 그러는 서툰 님은 뭐 하러 오셨어요?


저도 정리할 게 있어서요.



근데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들리나요?


부서장과 단둘이 하는 시간외 근무는 참 곤욕이더군요.


휴일에 쉬엄쉬엄 일하는 맛도 있는 건데 이건 평일보다 더 힘드니 원.


제 자리가 쓸데없이 부서장 자리와 무척 가깝거든요.


부서장의 타이핑 소리와 마우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그냥 놀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내가 부서장의 기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곧 내 기척 또한 부서장이 신경 쓸 수 있다는 뜻.



들리나요?
제 마우스와 키보드 질 소리가?



아, 집에 가고 싶다 2.






시든 거 못 드세요?


아침 안 드셨죠?
바나나 하나 드실래요?


방에서 나온 부서장이 바나나를 내밀더군요.



저는 원래 아침을 안 먹는데요.



그래도 하나 드세요.



그럼 왜 물어봤냐?


그렇게 받아들게 된 바나나는 이미 많이 시들어있더군요.


하루만 더 놔두면 버려도 될 지경이었으나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바나나는 퇴근하는 길에 버렸습니다.



네가 먹을 수 없는 걸 남 주지 마라.



그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하나 더 깨달은 게 있어요.


네가 먹을 수 있는 것도
남 주지 마라.
너나 많이 먹어라.



내가 못할 짓 남한테 시키는 것도 악당이지만, 내가 할 수 있다고 남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모르셨죠?


그래서 오늘 제 글은 어떠신가요?



모쪼록 읽을만하시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럭저럭 봐줄만하다는 생각이지만.



혹여 읽는 분의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많은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니잖아.



그것이 제가 글을 짧게 쓰려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답니다.


모르셨겠지만 그런 미덕까지 있었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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