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the Rain —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이루마의 곡 제목으로 비를 맞으며 느끼는 감성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비와 키스하다, 비에 입을 맞추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며 실제로 비를 맞은 적 있다. 비가 내리는 골목길에서 조용히 우산을 들어 올려 떨어지는 빗방울에 입을 대었었다. 기대했던 감미로움과는 달리, 비는 차가웠고 약간 찝찔한 맛까지 입안에 감돌았다. 빗물의 차가운 감각은 음악이 주는 온기와 대조를 이루었고 감성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기대했던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것대로 뭔가 비밀스러운 기억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족했다.
뭐그리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냥 비의 차가움과 멜로디의 온기는 그렇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스며들었다. 그도 그럴 만 한 나이였다. 때는 내가 16살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그 시절 Kiss the Rain의 첫 소절이 울려퍼지면 이루마의 음악은 비와 함께 세상을 적셨다. 당시 이루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뉴에이지 뮤지션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스스로를 뉴클래식 뮤지션이라고 칭했다. 음악의 선율도 좋았지만 Kiss the Rain, '비에 입을 맞추다'라는 제목이 갖는 감성적인 무게가 남다른 여운을 남겼다.
이루마의 또 다른 음악 'Chaconne'. 샤콘느는 천천히 발음하는 순간에서부터 슬픔을 연상케 한다. 'Kiss the Rain'이 비와의 조화로운 대화를 상상하게 한다면, 'Chaconne'는 비가 내리는 어둑한 들판에서나 느낄법한 섬세한 슬픔과 공감의 정서를 불러온다. 실제로 내가 자란 집 앞은 들판이 있었고 비가 오면 그렇게 고요했다. 음악은 순간을 더욱 풍부하고 다층적으로 만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감정도 음악이 더해지면 스펙트럼이 더욱 폭넓게 확장된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주던 기억. 남몰래 비를 슬쩍 입에 대어 보던 순진함. 그런식으로 비와 음악은 하나의 연결된 기억으로 남아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그 시절 나는 비 오는 날을 음악과 결합해 채워갔다. 그리고 여전히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새로 꾸린 공부방에 앉아 잊고 살았던 음악을 들으며 어린 시절의 감성을 곱씹는다. 기억은 현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보물과 같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해도 비가 내릴 때마다, 오래된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체감한다.
최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아기 바운서에서 단음의 멜로디로 'Kiss the Rain'이 흘러나왔다. 어린 아이들도 이 멜로디를 들으며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TV가 있는 곳마다 절절한 트로트가 송출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어떤 이에게는 순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트리거가 될 것이다.
음악의 힘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속에 스며든다. 음악은 세대를 초월해 여러 감정을 연결하고 기억의 조각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게 한다. 'Kiss the Rain'이 유아용 장난감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느꼈던 지난날의 감성적 괴리와 비의 차가움이 어린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궁금하다.-pm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