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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신고식, 손님편

다바오 적응기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쾅쾅쾅!!!

"계세요?"

쾅쾅쾅!!!

"저기요. 계세요?"


마치 문을 열어 놓은 것 같은 큰 소리로 문 앞에서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았다. 자다 깨서 부스스한 잠옷차림으로 남편 등을 밀었다. 누가 문을 열었는지, 주방과 거실 현관이 마주보고 있는 양쪽 문 모두 활짝 열려있었다. 방충망있는 철문과 나무 현관 모두 화알짝!


"없어진 거 없어요? 아랫집 도둑들었는지, 열려고 시도를 엄청 했더라고요. 이 집은 괜찮나요?"

"괜찮은데요? 여기 노트북, 아이패드 있고, 지갑도 여기 있네요."

남편은 괜찮다는 말만 한 세번 반복했다.

"잘 보세요. 진짜 없어진 거 없어요?"

방안에서 옷을 얼른 갈아입고 거실로 나와서 내 가방 부터 뒤졌다.

"없어! 내 지갑, 없어. 어머, 없네. 여기 파우치 밖으로 나와있잖아. 내 지갑 가져갔네. 어머! 내 휴대용 베터리도 없어."

도둑이 다녀갔다. 그리고 내 가방에서 지갑을 통째로 가져갔고, 가져가는 김에 휴대용 베터리도 가져갔다. 너무 웃긴건, 휴대용 베터리에 꽂혀 있던 충전 라인은 빼고 갔다. 주방 쪽 문을 열기 위해 방충망을 길게 찍었고, 문고리 부분의 방충망도 동그랑게 쑤신 흔적도 있었다.


"돈만 가져가지... 내 영문 운전면허증이랑 얼마전에 만든 유료 멤버십 마트 회원권도 거기 있는데..."

한숨과 함께 실소가 터져나왔다.

아랫집에서 올라온 이웃은 두 분은 한국 분이다. 이 건물 전체에 한인가정이 몇 있다. 현재 한국에 있어서 비어있는 세대도 있었다. 쑤시고 찢힌 방충망, 그 집 침입 흔적이 고스란이 보였다.


"어! 내 아이패드!"

한 10분쯤 흘렀을까, 남편은 이제서야 본인 아이패드가 사라진 걸 알았다. 새벽 1시 반경, 남편은 자다가 일어나 새벽 공기가 좀 차가워지는 것 같아 선풍기를 끄려고 일어났고, 발로 소리를 좀 크게 내면서 선풍기를 껐다고 했다. 그 때 밖에서 쿵하는 소리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고 했다. 설마 우리 집이려니 하고 그냥 도로 잤단다.

"아, 내가 인기척을 내서 얘가 다 못가져가고 지갑이랑 아이패드랑 가져갔나보네. 그때 나와 볼걸, 나는 설마 우리 집일까 했지.아......"

거실 책상 위엔 내 노트북, 남편 노트북, 내 아이패드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전부 안 가져갔다. 갑자기 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또 오겠는데.....


전날 저녁 ATM기에서 현금 2만 페소(한화 약 50만원)를 인출했다. 거의 현금이 생활화 되어 있기도 하고, 아직 은행을 만들지 못해서 현금이 필요한 때가 잦다. 현금이 똑 떨어져서 수수료 생각해 한번 뽑을 때 조금 많이 뽑았는데 그걸 몽땅 들고 간거다. 따로 보관했어야 했다. 나는 왜 현금을 그대로 지갑에 뒀을까, 왜 가방을 거실 의자에 뒀을까, 돈을 나눠서 보관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제 후회해서 뭐할까 싶은 생각에 들 무렵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위치 추적!!"

아이패드 위치 추적해보니 어디에 있는 지 보였다. 일단 경찰에 신고 후, (사실 경찰이 해결해 줄거란 믿음은 없었지만, 일단 신고했다) 생각보다 빨리 경찰들이 집에 왔고 경위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건물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각 집을 살펴봤다.

우리 집은 3층이고, 앞 계단이 아니라 뒷쪽 담을 타고 올라온 거라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방 창문 방충망을 찢고 손을 넣어 옆에 있는 나무 문을 열었단 사실 또한 놀라웠다. 전문털이인가.

그렇게 한 차례 경찰들이 훑고 가는 사이, 지인 목사님 부부가 찾아왔다. 아이들을 등교를 도와주셔서 나는 설거지도 하고 집 정리를 했다. 그리고 또 한 차례 경찰들과 수사관들이 집에 왔다. 또 올일인가, 왜 또 왔나 싶었는데 어디 소속인지도 모르겠는 사람들이 와서 사건 현장을 추측해보며 시뮬레이션을 했다. 직접 창틀에 손을 넣어서 문에 손이 닿는지, 뭘가져갔는지 말이다.

조사관들은 위치 추적이 되니, 남편보고 같이 용의자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이 사람들이 경찰인지 아닌지 내가 뭘 보고 믿나, 진짜 남편 보내도 되나 싶은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요즘 동남아, 캄보디아 사건 등으로 세상이 흉흉한데 무슨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그 사이 집 주인은 사람을 보내서 집 잠금장치부터 새로 바꿔달아줬다. 남편은 범인을 찾으러 갔다가 와서는 착잡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아이패드 위치는 찾았지만, 데이터도 잘 터지지 않고, 알람을 울리는 반응도 늦고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위치가 파악돼도 집안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단 말이다. 그리고 용의자가 좁혀지는 과정에서 어떤 아이의 할머니가 아이의 뺨을 몇 차례나 세게 때렸단다. 듣자하니, 물건을 훔친 사람은 놀음을 해서 빚이 있는 청소년이고, 그 아이는 공범이라는 것 같았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아이는 집을 나간지 3일 된 상태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단다. 경찰들은 별로 좋지 않은 동네라고 했지만, 남아공의 빈민가 보다 무섭지 않았다며, 그 곳에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이 지역을 사역지 삼아야 되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다바오에 온지 이제 막 3주차에 접어든 우리 가족에게 지난 3주는 무척 호된 신고식을 치르는 시간이었다. 첫날 강도 7이 지진이 있은 후, 며칠간의 여진이 계속 됐고, 그 다음 주에는 둘째가 40도까지 고열이 치솟아 앓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그리고 이틀 전 도둑이 들어 정착비용의 일부인 생활비와 몇가지 물건, 그리고 우리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았다.


이런 일이 있으면 항상 반성하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온다.

"나 뭐 잘 못했지?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하는 마음이다.


필리핀은 우리 인생의 지도에서 없던 나라다. 한번도 생각해보질 않았다. 마닐라 카비테 지역으로 파송받게 되려고 했던 일이 어그러진 후 그냥 주저 앉을 수는 없었다. 여러 지역을 정탐후 남편과 상의를 거쳐 다바오에 오기로 한 건 우리의 선택이었다.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고백하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 그렇게 굳게 믿었다. 당면한 상황을 좀 더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들이 보였고 무엇보다 카비테로 가는 것보다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큰 사인이었다.

그런데, 3주간의 폭풍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드는 생각이 자책이 뒤섞인 한숨으로 가득 찼다. 안개가 자국한 길을 끊임없이 걸어가며 두손을 모아 잡고 살금 살금 걷는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지금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겠지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저 매일이 힘들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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