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삼삼팔 Oct 06. 2022

글쟁이가 되고 싶은 날


글쟁이가 되고 싶은 날이다.

가끔은 나지막이 일어나기도 하고 가끔은 새벽녘 내내 깨어 머리를 쥐어뜯더라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나를 들여다보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 소재거리를 찾는 것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 외에는 고민할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써보고 저렇게 써보고 이래도 저래도 안 써질 때는 멍하니 하루를 보낸 후에 또다시 쓰고 또 쓰는 삶을 살고 싶다. 쓴 글을 또 읽고 또 고치고 또 읽고 또 고치더라도 결국 마음에 드는 한 편을 만들어 내기 시간을 투자하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돈'이라는 것과 나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자주 충돌해서 요즘 나의 사무실 라이프는 엉망이다.

'쉬는 날에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새로운 것도 찾아봐야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봐야지'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퇴근길의 나는 0%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출근길의 내가 100%의 에너지인가? 그건 또 아니다. 사무실에서의 업무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사람과 맡은 일을 사랑해서 다니는 사람의 오더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오더를 받아 다시 전달해야 하는 중간 직급의 나는 매번 의문 투성이다. 날이 갈수록 더해가는 상급자의 상명하달에 이제는 나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해도 불평불만으로만 치부되기 때문에 더 말을 할 수가 없다. 결국 그렇게 나도 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머리도 가슴도 답답할 뿐이다.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분명히 회사에서도 그런 삶을 살고 있었는데 회사의 규모가 커지니 결국 나도 그저 그런 부품이 되어간다. 아니, 부품 취급을 받아간다.


그래도 다시 한번 다짐한다. 꼭 글쟁이가 될 거라고.

괴롭고 또 괴롭더라도 완벽히 내 마음에 드는 글 한 편을 쓸 수 있는 자기만족에 빠진 꼬장꼬장한 글쟁이가 될 거라고 말이다. 타협 없이 생각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작은 거리를 큰 거리로 만들어 나의 글 안에서 빛나게 하는, 그 글을 애장품처럼 지니면서도 여기저기 굴려 괜히 귀해 보이게 만드는 삶을 살 거다.


입사 초 나를 가만히 보며 '너는 참 돌멩이 같은 사람이다. 아닌 것 같은데 생각이 참 단단해. 고집 있어 좋다.'라고 해주었던 팀장님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까지 들은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은 말을 꼽으라면 단연 제일 먼저 내보일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무엇을 기획하더라도 누구를 설득하더라도 확신에 가득 찬 나의 세계가 나도 좋았으니 그걸 콕 집어 칭찬해 준 말이 좋지 않을 리 없다. 확신이 있으니 열심히 할 수 있었고, 확신이 있으니 남을 설득할 수 있었고, 확신이 있으니 남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단단하니 사방에서 어떤 화살을 쏘아대도 우습다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때의 그 단단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하라고 하니 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틀에 나를 가두려는 이 세계 말고, 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이 틀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다 보니 물렁하다 못해 물러 터져서는 별 것 아닌 일에 마음이 곪고 몸이 곪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잘 지내지 못하는 데도 잘 지낸다고 에둘러 말하고 피곤해서 생각 없이 집에 가는 일상 말고, 잘 지내지 못하면 잘 지내지 못한다고 말하고 굳이 애써 포장하려 하지 않는 솔직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나의 모양이 이 세계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억지로 나를 구기지 않을 거다. 안 맞는 대로 지내며 회사는 그저 의식주를 해결해 줄 수단으로 두고, 나는 나대로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과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지나 보내는 24시간을 이제는 '당신'이 아닌 '나'로 보내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그렇게 두고 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