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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삼삼팔 Nov 05. 2021

내가 나를 나쁘게 만드는 습관


고쳐야 될 나쁜 습관이 있다. 하나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려는 습관. 습관인지 성격인지 알 수 없으나 예전부터 나는 그랬다. 잘 되든 잘 되지 않든 한번 잡았으면 끝까지 가야 했다. 적당한 시간 동안 적당한 열정을 쏟아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는 건데 그걸 못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 취미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취미 생활도 한번 시작하면 일과 같은 스트레스로 끝났다. 결국 난 취미활동도 스트레스처럼 느껴져서 시작조차 안 하게 되었다. 내 삶은 스트레스로만 가득했다. 홀가분하게 끝을 맺은 적이 없었다. 


남편은 나와 완전히 반대 성향의 사람이다. 내가 너무 꼼꼼하고 예민하고 그래서 쉽게 짜증을 많이 내는 사람이라면, 남편은 무덤덤하고 낙천적이며 짜증이 없다. 그래서 부딪힐 때도 있지만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의 그런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닮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예민한 레이더망에 걸릴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에 나 자신을 몇 번씩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니 내가 틀린 거였다. 다른 게 아니고 틀렸다.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곧장 눈에 밟히는 것들부터 전부 다 해결해야 제대로 씻을 여유가 생기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일단 씻고 내일 해도 되는 건 내일 하자는 사람이었다. 나도 이해는 했다. 머리는 이해했는데 마음이 이해를 못 해서 혼자 분을 삭였다. 혼자 열내다 제풀에 지친 내가 그렇게 몇 번 따라 하다 보니 이건 생각보다 괜찮았다. 당장 안 하고 내일 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눈에 지저분한 것들이 계속해서 밟히기는 했지만, 내 체력이 모두 충전되지 않았을 때 지저분한 것들은 일부러라도 안 보는 게 이득이었다. 그러면 짜증 날 일이 없으니까 감정 소모가 덜 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집에서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일을 할 때도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다음날 해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리더가 보면 가슴 쓰릴 말이지만 난 업무시간에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그걸로 난 받은 만큼 충분히 일했다고 느꼈다. 꼭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만, 내가 이 정도 받는데 그 정도로 일하면 받은 것에 비해 일하는 시간은 차고 넘쳤다. 남들 쉴 때 남들 점심 먹을 때 그만큼 더 일해서 야근을 하지 않는 게 내 감정에 더 좋은 일이었다. 항상 잠이 부족한 나에게 칼퇴는 충분한 잠을 제공했고, 그렇게 체력을 유지하며 일정한 감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감정이 널을 뛰지 않으니 나의 하루도 그만큼 퀄리티가 좋아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여전히 나는 받아 든 업무를 당장에 처리하지 못해서 안달일 때도 있고, 눈앞에 펼쳐진 집안일에 발을 광광 구르며 미친 듯이 치울 때도 있고, 사고 싶은 게 생각나면 온종일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사내고야 말 때도 있다. 다음날 생각하면 왜 샀나 싶을 것들이라서 매번 후회하지만, 그것도 그저 받아 들고 충분히 기쁘게 쓰면 되는 거다. 5만원 10만원 아낀다고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에 즐기며 사는 게 더 행복하다는 생각도 우습지만 간간히 들었다. 내 소비에는 항상 단 한마디 태클도 없이 '사고 싶으면 사-'라는 어찌 보면 대책 없고 어찌 보면 배려심 넘치는 남편의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정말 사고 싶으면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하나를 사기 위해 몇 날 며칠 검색하고 또 검색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다가 사지 않고 또 고민하며 나를 괴롭히던 날들보다는 훨씬 낫다. 이제 그런 일에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돈을 쓰면서까지 스트레스받는 멍청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지갑이 가벼워져도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나는 쌍수에 발까지 들고 환영이다. 나는 이렇게 소소하게 흥청망청한 삶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더 좋다. 


나를 나쁘게 만드는 건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나빠서 날 나쁘게 살도록 하는 거였다. 이제는 놓아줘야 한다. 고집을 넘어선 아집, 쓸데없는 생각으로 허비하는 시간들을 눈 딱 감고 놓아버려야 한다. 그리고 지켜내야 한다, 내 곁에 소중하게 항상 머물러 주어서 잘 몰랐던 사람들의 마음을.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건 없으니까 있을 때 잘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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