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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삼삼팔 Nov 17. 2021

그만 연주하고 싶어, F코드


<나의 F코드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불안함과 우울함을 달고 다니는 내가, 그래도 한번 이겨내 보겠다고 사들인 책들 중 하나다. F코드는 정신과 질병의 코드라고 하는데, 작가가 진단받은 코드를 예로 들면 F41.2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F32 우울병 에피소드, F42 강박장애 등이다. 와, 이름만 들으면 음침하고 스산하고 심각해 보인다. 41은 41이지, 41.2가 있다는 건 그에 딸린 것들이 더 많다는 건데 세상에. 세상이 넓은 것처럼 병의 범위도 어지간히 넓은가 보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쳐 살아가는 나는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꼈었다.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띵하고 온몸에 열이 느껴지다가도 달달한 밀크티 한잔에 눈 녹듯이 풀리곤 했고, 보슬보슬 비가 내리면 그걸 맞으면서 행복을 느끼곤 했다. 절대 다시 보지 않겠지만 예쁘고 귀엽고 화려한 스티커, 수첩같이 하등 쓸모없는 것들을 사다 나르면서 순간의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내 공간 속에서 알아서 기분을 바꾸며 살아갈 수 있었다.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집순이지만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2년을 독서실에 박혀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부터? 징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하고픈대로 행동하던 내가 행동에 제약을 받는 회사에 다니고부터? 아집에 가까울 정도로 답정너 마인드로 살던 내가 그 감정에 스스로 지쳤을 때부터? 알 수 없다. 어느 순간 갑자기 퇴근길에 눈물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것도 할 힘이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밥을 먹을 힘도 나가서 놀 힘도 웃을 힘도 화낼 힘도 다 사라졌다. 거의 2-3년 동안의 내 퇴근길은 눈물과 함께였는데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감정을 추스르고 웃으며 문을 열곤 했다. 한 번은 아파트 단지에서 한참을 울며 걷는데 엄마와 딱 마주친 적이 있다. 차 안에서 나를 보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오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의 우울이 전이된다는 걸 어느 정도 알게 된 이후로는 그래도, 울지 않는다.


이 책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작가가 쓴 글이 우울함에 허우적대던 때의 나와 일치해서였다.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고, 매 순간이 무의미했다><최대한 많이 자고 자다가 허리가 아프면 앉아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울고 나면 감정이 배출돼서 곧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말들이 흠칫할 정도로 와닿았다.


조기 치매가 아닌가..라는 걱정을 수시로 할 정도로 잘 까먹고 동선을 섞으며 움직이는 나의 모습이 우울한 감정 때문이구나,라고 알게 된 것도 이 책 때문이었다. 그래, 할 일은 많으면 까먹을 수 있지. 그래서 학교에 다닐 때부터 플래너를 달고 살았다. 매일매일 할 일을 적고, 줄 그어 지우는 게 내 자그마한 기쁨이었다. 기쁨으로 느낄 정도로 매일을 적으며 생활하는 나의 모습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유도 없이 순간적으로 까먹었기 때문에  뒤죽박죽 섞여버린 집안일 느낌이 또 달랐다. 작가는 써 둔 병원 진료 기록을 통해 나는 대신 진료를 받은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저절로 기억할 수 있었던 것들이 희미해졌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예를 든다.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 앞에 섰는데,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동작 버튼을 누르지 않은 게 생각나서 세탁기로 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곧 내가 뭘 하다 왔지? 고민에 빠진 순간, 손에 묻은 물기를 보고 아, 설거지.. 하고 부엌으로 간다> 이게 바로 내가 매일매일 하는 짓이었다. 이걸 하다가 저게 생각나서 저걸 하다, 그게 생각나서 그걸 하고, 다시 못한 저걸 하다가, 아! 이거! 하고 이걸 하고. 두세 번에 끝날 동선이 열댓 번은 오가야 끝이 나고 그러다 보면 짜증은 덤으로 오곤 했다.


<정확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버벅되고, 분명히 아는 내용인데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잦다>는 말을 하면서 작가는 썼다. 친구들은 '누구나 그래'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것, 가끔 그럴 수는 있지만 그런 하루가 매일 매 순간 반복되는 건 완전히 다르다고, 무섭다고 말이다.


이 책에는 결말이 없다. 몇 년째 치료를 받고 있는 작가도 지금까지도 우울함을 겪고 있고, 계속해서 치료 상담을 받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새로운 F코드를 얻고 있다고까지 했다. 그래도 스스로가 불편하다는 걸 인지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완벽히 나아질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너무 다행히도 세상에 감정적으로 완벽히 평온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해결의 목적지는 가까울 거다. 성격이려니 하고 살면서 힘들 때만 도움을 받으며 그저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에너지만 존재한다면, 사라져도 곧 그 에너지를 가져올 무언가가 있다면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기억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자책하고 비난하면 더 훅 가니까, 나를 자책하지 말 것>. 꿈꾸면서 살고 싶지 않다. 그냥 오늘 하루를 아니, 거창하지 않게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아,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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