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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one Jun 08. 2024

전통 병과의 재해석 - 곶감단지

할머니의 마음

 옛이야기에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등장하는 곶감

 곶감은 가을철에 수확한 감을 식어가는 볕과 국화향을 머금은 바람에 말린 것으로 쫄깃한 식감에 단맛이 특징인 겨울철 별미 건과이다. 나에게 곶감은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어릴 적 시골에 놀러 가면 멀리서 온 손주를 위해 밤에 할머니가 방으로 들고 들어 온 간식은 항상 곶감이었다. 반짝이는 성에를 보석처럼 박아 놓고, 먼지 같은 하얀 분태가 내려앉은 납작한 곶감을 할머니는 시커멓고 쭈글한 손으로 어루만져 나에게 주시곤 하셨다. 곶감의 꼬들하고 꾸덕한 식감과 미끄덩거리는 속살의 이질성은 어린 나에게 무척이나 낯설었고, 더욱이 쿰쿰한 단맛이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다. 손주들 오면 주겠노라며 언제부터 할머니 댁 냉동실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모를 그 곶감. 이상하게도 그 곶감에서는 할머니의 시큼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친근하지만 먹지는 않는 것이 곶감이었다. 이런 내가 곶감을 사랑하게 된 것은 곶감단지를 알고 나서부터이다.  


곶감단지는
전통 병과인 '방험병'을 재해석 한 현대의 한식디저트이다.

 '방험병(防險餠)'이란 한자어 그대로 험한 것을 막는 떡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당시 험한 것이었던 전쟁이나 흉년을 대비하여 대추, 밤, 곶감, 호두를 햇빛에 말려 꾸덕하게 그대로 굳혀 만든 것이 방험병이었다. 이것이 현대로 오면서 재해석되어 곶감단지가 되었다.

 먼저 곶감 하면 제일로 치는 상주 곶감을 준비한다. 곶감에도 1번부터 8번까지 크기가 있는데, 크기가 클수록 번호가 작다. 나는 위풍당당한 자태가 주는 멋이 좋아 2호, 3호 정도의 크기가 곶감단지용으로 적당하다고 본다. 여기에 경산 대추는 씨를 발라내어 채를 썰어 두고, 초록빛의 색감을 더하는 호박씨, 호두도 함께 준비해 둔다. 곶감단지에서 준비하기 가장 번거로운 것이 바로 호두이다. '번거롭다'는 말은 다시 말해 정성을 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호두는 굵은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미리 한 번 살짝 데쳐 건져내어 오븐에 바삭 구운 전처리 과정을 거친다. 그래야 호두가 가진 고소함을 오래도록 깨끗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처리 과정을 거친 호두는 물과 물엿, 설탕을 넣고 바글바글 졸인 뒤 물기를 빼고, 145도 정도의 기름에 타지 않도록 바삭하게 튀겨낸다. 기름기를 제거하고 나면 그 자체로도 너무나 훌륭한 호두정과가 된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호두정과는 다시 잘게 부수어 준비한다. 준비한 대추, 호박씨, 호두에 뒤끝이 쌉싸름한 거제 유자청보다는 뒷맛까지 달큼한 고흥 유자청을 더하고, 꿀과 함께 아주 약간의 향만 느껴지는 계핏가루를 조금 넣어 모든 재료를 섞어준다. 재료들이 모두 어우러져 하나로 꾸덕해지면 이제 소가 될 준비를 모두 마친 셈이다.

 곶감을 꼭지를 잘라내고 곶감 안을 살펴 씨를 제거한다. 씨를 제거하기 위해 곶감 안을 훑다 보면 제법 공간이 넓은 것에 놀란다. 이 공간에 진작 만들어 둔 소를 조금씩 넣어 채우는데 채우다 보면 한 없이 들어가는 그 공간에 또 놀라게 된다. 소를 넣다 보면 말린 곶감의 표면은 자꾸만 늘어나고 어느덧 곶감 크기보다 2배 정도 커져 땡땡해진다. 간혹 자꾸만 들어가는 소에 신이 나서 곶감을 터트리기도 하는데 이를 조심해야 한다.

  만들어진 곶감 단지를 보면서 나는 이제야 어릴 적 곶감을 내어주신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부풀어진 곶감처럼 손주를 보면서 부풀었을 할머니의 마음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나에게 주셨을 그 곶감. 냉동실에서 오래 두어 아끼고 아낄 수밖에 없게 만들고, 결국 이상한 내음까지 품게 한 것은 자주 찾아뵙지 않은 나의 업보라는 것을 어렴풋이 생각한다. 넉넉한 모습으로 중심을 잡고 있는 곶감단지를 조각내어 차와 함께 먹으면 고급진 맛의 조화가 일품이다. 그 조화 속에서 나는 이제야 그 어릴 적 할머니서 내게 주신 곶감의 진수를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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