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란 본디 피할수 없는 것이다.
오전 7시 40분.
우리집의 평범한 하루는 시작된다.
나는 평소와 똑같이 첫째 도시락을 싸고,
남편은 평소와 똑같이 첫째를 데리고 학교에 갔다.
나는 집에 남아 언제나 그랬듯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그새 깨버린 둘째아이에게 수유를 시작했다.
오전 9시 40분.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 난데. 지금 교통사고가 났어."
그날 오전 남편은 집앞 사거리에서 빨간 신호를 받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 히스패닉계 여성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달려와 남편이 타고 있던 차 트렁크를 그대로 들이받았고, 남편이 타고 있던 캠리는 그 충격으로 차선 중앙턱에 부딪히고 말았다. 뒷차가 얼마나 빨리 달려온건지 그 히스닉계 여성이 타고 있던 차는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편 차선까지 넘어갔었다. 남편은 충격으로 인해 그대로 넋이 나갔었는데, 다행이도 캠리에게는 사고발생시 자동으로 도요타 콜센터에 전화연결이 되는 기능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도요타 직원은 매뉴얼대로 남편 대신 경찰에 신고를 해주었다. 남편은 경찰이 도착하고 나서야 차 밖으로 나오고, 정신을 차릴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는 메릴랜드주 락빌에 살고 있었다. 가족이라고는 없는 타지에서 갑자기 남편에게 사고가 닥친 것이다. 첫째는 만 5세, 둘째는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젖먹이었다. 남편은 사고 트라우마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다행이 큰 부상은 없었지만, 근육통과 피로감을 호소했다. 운전을 두려워했고, 가족을 그리워했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했다. 나 역시도 두 아이의 육아와 살림과 끝나지 않은 석사학위 과정 모든 것이 맞물리면서 미국에 머무르는 것이 점점 버거워졌다. 그 와중에 미국 보험회사로 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이 타고 있던 캠리는 트렁크가 완전히 박살이 나서 폐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돌아가자."
폐차소식을 듣고 일주일 만에 우리는 귀국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내린지 두 달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팔 짐은 서둘러 팔고, 팔리지 않는 것들은 주변에 나눠주었다. 미국에 6개월은 더 머무를 줄 알았기 때문에 산 지 2주밖에 안된 가구도 있었다. 저렴한 값에 미련없이 정리를 했다. 아이 학교중단, 인터넷, 전기, 관리비, 아파트 렌트계약 해지 등 모든 것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깊이 잠들어버린 남편과 아이 둘을 방에 두고, 귀국비행기를 타는 날까지 밤을 새며 정리를 했다. 남편은 지쳐서 짐을 쌀 힘도 없었다. 젖먹이 아이를 등에 업은 채 귀국이사 박스를 싸고, 가구를 팔았다. 조명만 남은 아파트 마루를 걸레로 닦으면서, 허망하게 끝나버린 미국에서의 1년을 생각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미국에 와서, 아이 둘을 데리고 복닥거리다가 이렇게 돌아가는 구나. 아쉬운 점도 많았고, 섭섭한 점도 많았다. 하지만 이것이 운명이다. 미국에서 의지했던 친구들이 불러준 노래를 되뇌였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