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사탕 Oct 25. 2022

나의 아버지를 마주하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해방은 어떤 해방일까,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일까 궁금했다. 자신으로부터의 해방 아니면 어떤 압력으로부터의 탈출일까?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으면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미 해방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떤 것에도 구속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82세의 나이에 전봇대에 부딪혀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되고, 그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3일, 그리고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가 살아왔던 곳곳에 뿌리는 것으로 그 장례를 끝내는 딸의 이야기다.



빨치산으로, 사회주의자로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가 겪은 삶의 무게를 딸도 다른 색깔로 겪었다는 표현이 맞을까?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이 흘렀다. 다 읽고는 꼭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고. 소설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독자인 나의 느낌은 분명 평론가와는 다를 것이다. 다만 읽어내려갈 때 어느 지점에서 멈춰서,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는 단락들이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읽을 때 결국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자주 경험하기 어려운 탓에 책을 덮는 것이 아쉬웠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나만 알고, 나만 공감하고 싶은 탓이다.



90년대 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었을 때 이런 신세계가 도대체 어디에 있었기에 나는 바라본 적도 없었는지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빨치산 이야기,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많은 사람들의 투쟁은 마음을 온통 흔들어댔다.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군부의 독재가 끝나면, 김대중과 같이 민주화 투쟁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 나라의 정권을 잡으면 완전히 바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노태우와, 김영삼을 지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이후, 아무리 많이 달라졌어도 세상이 뒤바뀌지는 않았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꿈꾸었던 세상은 절대로 오시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때의 기대는 거대한 보수의 산에 부딪혀 대통령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다시 독재의 거대한 산 같았던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터무니없는 정치를 했을 때도 민주화라는 이름은 도대체 어디에 내걸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80년대, 90년대 민주화를 위한 투쟁 이후, 목숨을 걸고 싸웠던 많은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현실에 한없이 실망하지 않았던가. 아니, 나라의 정치는 크게 변하지 않지만, 그 투쟁에 한 가운데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변절했던가? 북한과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은 정치인이 되어서 온갖 구설수에 휘말렸다. 현실은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여공으로 사는 일이, 아이 넷 낳고 사는 일이 적잖이 노곤했으리라. 어린 동생 들쳐업고 똥기저귀 빨던 어린 시절처럼 동동거리며 살아왔을 영자의 지난 시간이 눈앞에서 본 듯 환하게 밝아왔다.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 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p110)

아버지는 누군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절대로 그냥 넘기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임없이 이어져 함께 했던 빨치산이거나, 같이 하지 못했지만 응원했던 사람들이나, 어릴 적 친구들이나 주변에 사람들이 늘 가득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도와줄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이 아버지에게는 귀찮은 일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다.  


아버지의 동생인 작은 아버지가 빨치산인 형으로 인해 힘들었던 과거 떄문에 형을 절대로 만나지 않는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숨은 다른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 그저 빨갱이 아버지 때문에 집안 망하고 공부 못한 것이 한이라 사사건건 아버지를 원망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홉 살 작은 아버지는 잘난 형 자랑을 했을 뿐이다. 그 자랑이 자기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작은 아버지는 평생 빨갱이 아버지가 아리나 자랑이었던 아홉 살 시절의 형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대낼 수 없었던 작은 아버지의 인생이, 오직 아버지에게만 향했던 그의 분노가 처음으로 애처로웠다. (p129)


군인들이 학교에 와서 형 이름 고상욱을 대면서 고상욱 아는 사람 있냐고 물었을 때 자랑스러운 형 이름이 나오자 냉큼 형이 집에 왔었고, 아버지가 잔치를 열었다고 입을 나불거리는 바람에 아버지가 결국 죽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사실 작은 아버지의 대답 때문인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형이 자랑스러워서 말한 탓에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이 작은 아버지가 내내 형을 만날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니었겠는가. 



질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 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아버지의 영정을 응시하던 그가,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흰자위가 붉었다. 나의 눈도 그러할 터였다. 작은 상욱이, 김상욱씨가 가만히 눈물을 훔쳤다. (p181)



3일간의 장례식을 치르며, 어렸을 때 한없이 가까웠던 아버지가 4학년 때 다시 감옥에 갔다 사춘기가 된 후에 돌아와 아버지로서 가까워지기 어려웠던 ‘나’. 그렇게 거리를 둔 채 살았던 아버지를 장례식 동안 사람들을 만나면서 진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레포의 딸이 끓였다고 맛있기야 하겠는가. 남다른 손맛에다 무엇에든 정성스러운 언니의 마음이 담겨 맛있을 터였다. 동지의 딸이 끓인 전복죽이니 빨치산들에게는 남다른 맛이기도 할 것 같았다. 평생 떡 만들며 살아온 언니가 동지는 아니니 이 전복죽이 동지애의 발로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가난한 빨치산의 장례식에는 날고 기는 사람들의 장례식에도 없을 전복죽이 있다! 어쩐지 마음이 언니가 뽀땃하게 끓여 온 전복죽처럼 뽀땃해지는 느낌이었다.(p190)




크게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도 쉽게 나서서 도와주던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너 나 없이 팔 걷어 부치고 돕는 사람이 넘쳐났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그 사람의 진짜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걸까? 곁가지 생각으로, 내 장례식에는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슬퍼해 줄 수는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 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p197)

나도 그랬다. 너무 부러웠다. 세월이 갈수록 이런 질긴 마음들은 사라지고 있다. 그런 마음들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거다. 이해타산이 얽히지 않으면 그렇게 질긴 마음으로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진다. 참 두려운 세상이다.


그러니까 내게서 아버지를 빼앗아간 것은 이데올로기나 국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다. 아버지와 다름을 깨닫고 아버지를 닮고자 서서 오줌을 눌 만큼 아버지는 나의 전부였다. 그 아버지를 이데올로기가, 국가가 빼앗아 간 것이다.

어느 쪽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차운 철제 침대에 누워 수의에 싸이고 있는 저 시신과 내가 적어도 한때는 한 몸이나 같았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저 육신이 내일이면 몇줌의 먼지로 화할 것이다. (p201)

집 안간 딸자식에게 언니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비수가 꽃힐 때 알았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자식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가족을 등지고 사회주의에 몸담았을 때,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혈육을 뿌리치고 빨치산이 되었을 때, 이런 마음이겠구나. 첫걸음은 무거웠겠고, 산이 깊어질수록 걸음이 가벼웠겠구나. 아버지는 진짜 냉정한 합리주의자구나. 나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p217)


딸인 주인공은 아버지의 장례에서 만난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해 나갔다. 아무리 오랜 세월 함께 했어도, 자식이어도 아버지를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남보다 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주인공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장례식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새응ㄹ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p224)


문득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떠올랐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를 위해 울었다기 보다, 혼자 남은 나의 어떠함이 무서워서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기댈 벽이 하나 무너진 것 같아서 더 많이 울었다. 인간에게 부모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부모의 죽음은 결국 자신이 혼자 남았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 슬픈게 아닐까?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꺠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 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서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이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p231)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 전에 자식이고 형ㅇ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날 밤이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p248)


부모를 다 알 수 있는 자식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지금 세대의 나이든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도 아까운 줄 모르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자식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것을 정말 당연하게 생각했다. 지금은 어떨까? 나의 자식들은 나의 죽음에 이런 마음을 갖게 될까? 문득 두렵기까지 하다.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저비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점점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p265)

아버지가 빨치산, 빨갱이로 평생 살아가는 것을 본 나에게는 그게 가장 큰 몫으로 보였을까? 이제 나의 아버지로 남았다는 말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아버지’도 나에게 기억되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나의 어머니’로 오래도록 기억되면 좋겠다.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이런 책들을 만나서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보듬어 줄 수 있게 해주니 그게 정말 고마웠다. 










작가의 이전글 50대의 아줌마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