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을 후회했을까요?
브런치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적다 보니 문득 내 인생엔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느껴진다.
사연 없는 무덤 없다지만, 스스로를 나름대로 평범하다 여겼는데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2014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스페인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셨던 삼촌께서 한국에 잠시 들어오셨었다.
고깃집에서 냉면을 먹고 있던 내게 갑자기 필리핀에 가보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고등학교 1학년이 듣기에 그 제안이 얼마나 생뚱맞았던지, 오히려 관심이 갈 정도였다.
필리핀 두마게티, 들어본 적도 없는 작은 섬에 아는 선교사님이 계시니 가보라고 하셨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중히 사양해야 마땅한 제안이다.
학교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기에, 나를 아끼는 누나들도 친구들도 말리기 일쑤였다.
근데, 하필이면 몇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에 <인셉션> 되었다.
1. 나도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2. 필리핀에 가면 누군가를 돕는 삶을 배울 수 있을까?
3. 내가 뜻도 없이 대학에 가는 게 의미 있을까?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은 배경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결정장애를 가진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두 명의 누나를 모시며 자라온 나는 누나들의 칭찬이 따라오는 순종이 편안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선택을 회피하다 보니 어느새 편의점에서 과자 하나를 고르는데도 후회가 두려워 15분을 고민하다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었다.
스스로 바라본 내 모습이 이렇다 보니 누구도 못할 선택을 주도적으로 해보고픈 충동이 들었다.
2) 모태신앙으로 자라 매주 교회를 가다가 중학생 무렵 내 삶의 근원, 목적, 결과를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삶의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타인을 돕는 일로 바뀌었다.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했지만,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로 타인의 인정에 고팠던 내게 선행은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필리핀 선교지에서 머무는 삶은 이런 내가 꿈꾸는 삶일 것이라 생각했다.
3) 솔직히 말하면, 고된 입시생활을 피하고 싶었던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 뜯어말리는 이들을 뿌리치며 필리핀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뒤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자퇴서를 낸 그 순간을 후회했을까?
우선,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난 아직도 자퇴서를 내고 학교를 나서는 내게 비치는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잊지 못한다.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자유를 처음 맛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리핀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것도 있었지만, 우선 내가 생각했던 환경과 많이 달랐고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필리핀에 간지 9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가정형편이 나빠져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자퇴하고 부푼 기대로 필리핀으로 떠났던 나는 바랐던 환경도 경험하지 못하고 심지어 9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아집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는 18살 중졸이었다.
그런데, 다른 관점으로 보면 주체적인 선택을 내리는 법을 배운 동기부여된 청소년이었다.
필리핀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아무것도 없이 누군가를 도울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도우려면 전문성이 필요하단 걸 느꼈다.
고등학교 1학년 땐 느끼지 못했던 대학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난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함께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학교로 향할 때 나는 구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재밌게도 동기부여가 되니 공부에 집중이 되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960점 정도의 토익성적도 만들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신입생이 되고 자퇴서를 내던 그 순간을 돌아보았다.
분명, 삼촌의 제안을 거절하고 입시에 매진했다면, 더 좋은 대학을 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동기부여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동기부여로 인해 내가 얻은 혜택은, 입시로 고생한 동기들에 비해 전공 공부에 훨씬 더 몰입할 수 있었고 4점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인생이 내 뜻 같지만은 않을 때, 가능한 주체적인 선택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지다 보면, 어디에 서 있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