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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6 | 재즈를 동경한 클래식 음악가

클래식 음악가에서 음악 그 자체를 다시 사랑하게 되기 까지

by 테오도라

얼마 전,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국악소녀 송소희의 인터뷰를 우연히 보게 됐다. 전통 국악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국악에서는 특히나 선생님의 계열이 있어서 똑같은 구간에서 똑같은 기교를 해야 잘한다고 평가를 받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가 가진 목소리의 장점으로 국악을 표현해서 저만의 방법으로 전통을 지켜가고 싶었어요.”


클래식 음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클래식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어울릴수록,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들은 분명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전문가가 되고 있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선 안에 갇혀 사는 듯했다. 그 세계는 정교했지만, 너무나도 단단한 테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만의 동그란 세계 속에 살았고, 명확히 그려진 테두리를 넘어서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사실, 클래식 전공을 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은, 끈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햇살 좋은 날에도 홀로 연습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해가 지고 새벽이 되도록, 악보에서 손 한 뼘의 길이도 안되는 단 3초간의 구간을 완벽히 연주하려 애쓴다. 매주 반복되는 교수님과의 개인 레슨, 그리고 모두 앞에서 솔로 연주를 완벽히 완주해야하는 스튜디오 리사이틀을 생각하면, 매일 연습실 문을 나서는 것조차 죄책감이 되곤 했다.


그 시절, 나는 재즈 연주자들을 동경했다.

같은 학교 음대 재즈 전공자들의 공연을 혼자 종종 보러 가곤 했다. 그들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주고받는 눈빛, 유쾌한 웃음, 즉흥적으로 탄생하는 음악. 그 안에는 자유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자유로움을 너무나도 부러워하고 동경했다.




열 살 때 읽은 <어린 왕자>를 어른이 돼서 다시 펼쳐보면, 차원이 다른 울림이 느껴진다. 삶의 경험과 당시의 감정에 따라 같은 문장도 다르게 읽힌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감정을 경험한다.

한때 정신없이 온 열정을 다해 사랑했던 것을, 어느 순간에는 미친 듯이 미워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이럴 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것과 연결된 내 감정과 모습’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시간이 흐르면, 감정과 기억이라는 안개가 걷히고 나서야 비로소 그 본래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엔 잠시 잊었던 아름다움,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 가려졌던 본질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클래식을 미워한 게 아니었다.

클래식을 하며 느꼈던 압박감, 완벽을 향한 강박, 나 스스로에게 했던 기대와 불안이 싫었던 것이다.


음악은 늘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 초등학생 때 미국에 이민을 온 후, 영어보다는 음악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음악은 언제나 든든한 벗이 되어주었다. 길을 잃은 날에도, 스피커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음악은 나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다시 클래식을 사랑한다.


송소희는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악원을 나와서 서양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힙합 콘서트를 가고 그로 인해서 변화가 된 게, 음악 안에서 국악을 바라봤을 때 우리 국악이 좀 더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국악을 진정하게 사랑하게 되고 내가 정말 멋있는 음악 하는 사람이구나 자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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