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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Jan 20. 2023

잃어버린 복권

“새해 선물이에요. “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흰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자동으로 뽑은 5천 원짜리 로또였다.


“명당에서 줄 서서 뽑은 거예요. 새해 기운 좀 넣었으니 당첨 확률이 더 있을지도 몰라요.”

새해 첫 받은 선물이 로또라니. 올해가 아직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2023년도 기억 남는 선물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1등은 6번 나오고 2등도 30번이나 나온 명당에서 사 온 로또란 말에 새해의 좋은 기운까지 더해 7번째 당첨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게다가 오늘은 토요일이다. 몇 시간 후면 내가 그 7번째가 될 수 있으려나 싶어 괜히 집에 빨리 가고 싶어 진다.


잔뜩 품은 기대감과는 달리 나는 받아 든 작은 종이를 들고 있던 책 속에 무신경하게 끼워 넣고 차를 마시러 이동했다.

입고 있던 코트에 주머니가 없었고 지갑에 넣자니 종이가 구겨지는 게 싫어 책 속에 끼워 넣은 것이다.

그 후로도 한참을 후배와 수다를 떨다 당첨이 되면 가방을 하나 사주겠다는 야무진 선언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쯤이니 이미 발표는 끝난 후였을 것이다.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행복을 좀 유예하기로 했다. 당첨 후 후배에게 사례를 하고 돈을 어떻게 쓸지 상상하며 오늘밤을 보내고 싶었다. 상상만으로도 그날밤은 행복했다. 복권 한 장이 내 앞날을 다 바꿔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다음날 오후, 혼자만의 상상은 충분히 했다 싶어 복권을 넣어두었던 책을 펼쳐 보았지만 로또가 없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한 페이지씩 샅샅이 뒤져보는데 어디에도 없다. 가방을 탈탈 털어보고 지갑에 내용물까지 다 꺼내 보았지만 어디에도 그 흰색 종이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싶었다. 그 로또가 진짜 당첨되었으면 어쩌지. 몇년 째 아직도 찾아가지 않은 00회 차 당첨금 뉴스가 내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닐까.

상상력이 풍부한 INFP라는 사실이 이럴 때는 정말 도움이 안 된다.

 그럴 확률은 현저히, 아니 아예 없다고 진정해 보려 노력했지만 어제 펼친 상상의 나래가 현실이 될 수 있었는데 나의 부주의함이 모든 것을 없애버렸구나라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부주의함을 원망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로또는  나에게 상상의 행복감을 만들어주었지만 상상의 절망도 함께 주었다. 나는 가진 적도 없던 상상 속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새해에는 조금 더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할텐데 싶어 그간 부주의했던 내 정신상태를 좀 더 챙겨야겠다.


다시 온 주말, 가방을 다시 정리하고 있는 데 안쪽 작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이 보인다. 로또다. 잃어버린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를 외치며 바로 대조해본다.


로또는 숫자 단 하나도 맞은 것이 없었다. 꽝이었다.

꽝인 로또를 잃어버려서 나는 일주일을 절망감에 보냈다. 꽝인지도 모른 채 잃어버린 그 로또가 1등 당첨이었으면 어떻게 하나 후회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항상 그랬다. 가지 않은 길을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며 후회하며 지금을 절망 속에서 보냈다.

실패한 선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데 ‘그때 결혼을 했더라면, 그때 이직을 했더라면’이라고 선택하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선택하지 않은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느라 지금 현재를 보지 않았다.

그때 선택하지 않은 길의 결과가 당첨인지 꽝인지는 잃어버린 로또처럼 확인할 수 없다. 확률상 오히려 꽃길이 아니었을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을 잘못한거라며 아니면 내 실수로 모든 것이 망했다며 가진 적도 없는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행복은 보지 않고 말이다. 인생은 로또의 숫자처럼 당첨이 정해져있는 것도 아닌데 꽝인 패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로또를 다시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꽝인 로또를 평생 아쉬워하며 살지 않을 수 있어서.

그리고 새해 첫 선물이 꽝인 로또여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한 살 먹은 나이에 조금 더 걸맞은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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