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애매하게 아는 것들이 참 많다. 간접적으로 접해봤기 때문에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한국어로는 '잘 모름'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나는 이 표현을 자주 쓴다. 모르면 모르는 건데, 아예 모르는 것까진 아니고 '잘'은 모른다.
누군가 내게 레슬링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잘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잠깐 MMA를 배워서 태클과 스프롤이 뭔지는 안다. 얼추 비슷하게 따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레슬링에는 수많은 요소가 있다.어떤 원리로 중심을 무너뜨리는지, 기술의 대분류는 어떻게 되며 어느 상황에 사용하는 것인지, 겨드랑이를 어떻게 파고 그립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등...나는 그걸 설명하고 재현할 수 있는가? 아니다. 나는 레슬링을 모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잘 모른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레슬링을 '전문가까진 아니어도 어쨌든 아는 사람'이 된다.
이 말장난 같은 표현은 십수 년 간 내 성장 속도를 늦춰왔다. 이번 분기에 그걸 깨닫고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나는 왜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못했을까? 무언가를 몰라서 겪은 큰 트라우마가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측은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잘'이라는 부사 하나만 빼면 나는 그냥 모르는 사람이 되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2. 앎
진정한 앎은 체득에서 온다. 직접 경험해야만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의 간접적인 경험은 앎에 다가가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책을 수십 권 읽으며 돈을 공부한 사람은 '부를 안다'는 것에 미약하게 가까워졌다. 하지만실제로 투자해서 목표치까지 자산을 불려보기 전까지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다. 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채과녁의 10점을 노려보더라도, 손을 떼기 전까지는 화살이 어떤 써클에 안착할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럼 체득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체득은 나를 내던질 때 가능하다. 말 그대로 '기투(Entwurf, 企投)'하는 것인데, 모르는 영역에 스스로 들어가 이것저것 해봐야 한다. 경험 중에서도 넘어지고 깨져보는 게 가장 좋다. 이번 분기의 나는 블록체인 베이스 지식을 쌓고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매주 블록체인 강의를 듣고 파이썬으로 코딩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정리해 일요일마다 P1 멤버들에게 설명했다. 이렇게 직접 내 손으로 정리하고 말하는 내용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성장을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음악 리뷰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했다. 모르는 게 많은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를 내던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