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사람 많아? 그래서 몇 번째야?"
"6번째"
남편이 소아과 병원 건물 오픈도 전인 새벽 3시 30분에 줄 서서 받아온 영광의 대기번호다. 새벽 6시에 남편에게 대기번호를 확인한 나는 6번이란 소리에 강한 희열을 느꼈다. 이 맛에 오픈런 하는건가!!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소아과 운영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다(주말 9시). 선생님께서 꼼꼼히 잘 봐주시는 걸로 소문이 났는지 원래도 치열한 접수 경쟁이 더 심해졌다. 상황이 이렇자 8시 30분 오픈하고 9시쯤에는 당일 접수가 마감된다. 1명당 진료시간이 길기 때문에 우리 진료순서가 언제 올지 가늠할 수가 없다. 대기번호 100번으로 시작해 70번대, 40번대, 20번대의 지난날을 보낸 우리는 온종일 소아과 주변만 맴돌아야 하는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오픈런에 합류하게 됐다.
대기 6번의 쾌거를 이룬 날은 어린이날이었다. 새벽에는 예정된 비까지 세차게 내렸다. 차디찬 공기에 빗줄기까지 굵어지자 주변에서 코 훌쩍대는 소리와 기침 소리가 잦아졌다. 보통 소아과 건물은 오전 5시 40분에 열린다. 그때부터 차례로 들어가 대기표를 출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따라 유독 빗속에 대기하고 있는 인원이 많아 건물 관리인께서 평소보다 일찍 문을 열어주셨다고 한다. 덕분에 대기줄 선 부모들은 약 1시간 동안 비를 피해 건물 안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남편이랑 몇몇을 제외하곤 많은 이들이 주섬주섬 캠핑의자와 돗자리를 꺼냈다고 한다. 다들 새벽 대기에 익숙해진 눈치다. 아픈 아이를 위해 잠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 소아과 오픈런을 하는 이 현실이 참 웃프다.
그렇게 손에 쥔 6번의 대기표. 애들을 돌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남편의 고생 끝에 얻은 결실에 찬사를 보내며 근처 해장국집에서의 첫끼를 권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지친 남편은 쪽잠을 청했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잠이 덜 깬 아이들의 잠투정을 뒤로한 채 외출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접수는 오전 9시부터다. 번호판에 숫자 1이 떴다. 순서가 호명됐는데 나타나지 않으면 빠른 속도로 넘어간다. 창구 앞은 이미 북적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여담이지만, 대기번호 1번의 주인공은 새벽 1시부터 대기했다고 한다. 부모의 노력에 짧은 탄성과 함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병원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부모들은 분주한 손길로 아이들을 달래고, 시선은 창구 번호판에 꽂혀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그렇게 6번이 호명되고, 우리는 12번째로 접수했다. 남편의 헌신으로 우리는 진료실 앞 화면에 띄어진 접수명단 첫 페이지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앞선 번호가 형제, 자매가 많다 보니 생각보다 우리 차례는 빨리 돌아왔고, 그래서 오전 10시쯤 병원을 벗어날 수 있었다. 어딜 가나 요즘 대기가 많다지만 이곳의 대기는 속된 말로 넘사벽이긴 하다.
이사로 집과 병원의 거리가 멀어졌지만, 선생님 진료일에는 대기를 감안하고라도 무조건 이 병원을 찾는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 병원에 가야 하나 싶을 수 있다. 허나, 의사 오진으로 고생했던 첫째의 건강을 되찾아준 선생님이시다. 내 아이에 대한 데이터가 누구보다 많은 선생님을 두고 소아과를 바꾸는 건 절대 쉽지 않다. 다른 부모들도 비슷한 이유로 계속 찾는 게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본다.
"살면서 오픈런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여기서 하네, 고생했어"
집에 오는 길, 차 속에서 남편과 쓴웃음 지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선물처럼 얻은 하루를 아이들과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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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우리 가족은 그날 바이오리듬이 깨져서
다 함께 쓰러져 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