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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리 Jan 01. 2025

무기력

잠이 깨면 거실로 나간다. TV를 켜면 뉴스가 나온다. 뉴스 채널이라 내용은 반복된다. 마치 학습을 하듯 내용을 머릿속에 기입한다. 부엌으로 옮겨 물 한 잔을 마신다. 한 모금을 마시면 목이 좀 아프다. 밤새 마른 목이 물에 천천히 젖어들지 못한 탓이다. 성격이 급한 탓에 조금씩 마시지 못한다. 결국 벌컥거리다 가슴을 좀 매만진다. 목이 아픈데 가슴을 만지면 나으려나? 그리고는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여름엔 차가운 물에 섞어 마셨는데 이젠 어렵다. 포트에 물을 끓여 조금 섞어 본다. 따뜻한 커피는 마시기에 편하다. 뜨거운 건 마시기 어렵다. 미지근한 게 먹기에 편하다. 그렇게 두어 잔을 마시고 나면 잠이 좀 깬다. 화장실에 들렀다 나와 소파에 앉는다. 편한 자세로 앉아 핸드폰을 연다. 메신저를 열어 밤새 온 게 있나 살펴본다. 멀리 가 있는 딸이 보낸 내용에 귀여운 이모티콘을 하나 보낸다. 일어났다는 표시이다. 그리고 나면 다른 sns를 열어 본다. 인스타그램도 보고 트위터도 본다. 딱히 구독하는 내용은 없지만 시간을 흘러 보내 듯 그렇게 보낸다. 그리고는 게임을 한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무료하게 흘려간다. 그러기를 여러 날 해왔다. 아니 여러 달 해왔다. 나는 무기력하게 시간을 허비한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왔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예민했던 의식이 무뎌졌다. 팽팽하게 당겨놓은 듯 긴장감이 나와 함께했는데 병원을 다니면서 줄이 느슨해졌다. 감정이 버석거리고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약에 취한 듯 시간이 흐르고 일상이 되었다.


긴장감은 꽤 괜찮은 것이었다 생각한다. 조마조마하고 언제나 예민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나는 꽤 활동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탕탕하게 짜인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활동을 하고, 집에 오면 여러 일을 했다. 전업주부였지만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전체를 훑어보고 통찰력을 키우면 활동의 반경을 넓혔다. 그러다 깨어졌다. 깨진 걸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약은 접착제로 쓰기에 한계가 있다. 바들바들 흔들리는 느낌이 반복된다. 그러다 두껍게 붙어버린다. 얇고 투명했는데 두툼하고 색깔이 생겼다. 세상을 보는 눈에 안개가 끼인다.


무기력은 익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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