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주는 사람
누구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숨기고 싶은 비밀은 있으니깐.
손이 베었다. 피가 났지만 하던 일이 바빠 휴지로 대충 닦고 잊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 손을 씻는데 따끔했다. 얇은 종이에 벤 1센티가 안 되는 부위인데 쓰라렸다. 물에 손을 넣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한 손으로 거품을 내 얼굴을 씻었다. 작은 상처라고 얕본 게 잘못이었다. 물이 닿자 세균 감염을 막으려 발버둥 치듯, 이렇게까지 아팠나 싶을 만큼 따끔했다.
외상은 외부의 접촉으로 쉽게 반응한다. 통증을 느껴 바로 치료할 수 있지만 내상은 쉽게 알 수 없다. 보이지 않으니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모른다. 바쁘다는 이유로 감정을 넘기다 보면 곪아서 무뎌지기도 하고 이유 없이 폭발하기도 한다. 어느 날 무심코 들은 말에 뾰족하게 반응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생각의 틀을 재단하면 관계는 극에 달한다. 관계의 늪에서 주고받는 말이 세균이 되어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은 곪아 간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은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거짓말처럼 가라앉는다. 내가 아픈 건 당연하다고, 그럴 수 있다고 듣는 순간 마음의 상처는 녹아내린다. 내 잘못을, 내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받으며 이기적인 양심이 돋아난다. 따스한 눈빛으로 나의 치부를 덮어준 사람, 환한 미소로 나를 안아준 사람. 난 더 부끄러웠다. 내가 몰랐던 사건의 원인이 고개를 들자 마음은 조금씩 풀어졌다. 사랑은 고운 정만 있는 줄 알았는데 허물없는 미운 정이 너그럽게 나를 감쌌다.
남의 치부를 덮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나의 치부를 알기는 할까. 우리는 다른 이의 아픔과 상처에 동정하는 척 상처를 준다. 험담을 하거나 비아냥하지 않아도.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을 친구는 있을까. 하던 행동을 멈추고 눈을 마주친다면, 귀로만 듣지 않는다면, 분명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가 생길 것이다. 누구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숨기고 싶은 비밀은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