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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Feb 16. 2024

그럴 만한 이유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_ 사랑꾼 최수종

   전화를 걸었다. 2주 전 보낸 문자를 확인하지 않은 친구에게. 걱정과 달리 목소리가 밝았다. 쏟아지는 광고에 문자 확인을 안 하게 된다고, 아들이 방학이라 밥 챙기는 것만으로 바쁘다고.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났다. 늘 먼저 안부를 물었고, 힘들 때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가끔 전화로 근황을 살폈지만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다. 집에 놀러 오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어느새 삼 년이 지났다. 만나지 못한 세월만큼 그간 쌓인 이야기를 하느라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우린 첫 직장에서 만났다. 부서가 다르고 층이 달라 그저 눈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였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동갑이란 이유로 가까워졌다. 십 년 넘게 일한 직장에서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험한 고개를 함께 넘어선 지, 친구는 큰 키만큼 이해심이 깊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건 뱃속 아가 때문이었으리.


   백수가 되고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아가는 뱃속에서 들었던 내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처럼 울다가 울음을 그쳤다. 대학 졸업하고 쉬지 않고 일한 근성 때문인지, 우리는 만나면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장사해 볼 생각으로 가게를 알아보았지만 친정어머니가 말렸다. 어쩔 수 없이 친구는 혼자 장사를 시작했고 처음이라 직원 없이 일했다. 시간을 쪼개 틈틈이 가서 거들었다.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버티다 손해 보지 않고 넘겼다며 묵묵히 이야기했지만 핼쑥해진 얼굴이 심정을 말해주었다. 언제나 웃는 친구다. 지금처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건 그때 동업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사랑꾼 최수종이 부부를 열아홉 글자로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친구가 생각났다.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옳다고 말해주는, 잘하고 있으니 힘내라 말하는 친구였다. 힘들 때마다 말로 안아주었다.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했다고, 물집이 생길 만큼 얼마나 참고 애태웠을지 가슴 아팠다. 누구의 말과 행동보다 너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했다. 친구가 그랬듯, 지금 읽을 만한 책 한 권을 소개했다.


   다음 날 문자가 왔다. 그 책 읽는 중, 에필로그 읽는데 술술 읽혀. 친구가 책에 빠져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인생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왕 사는 인생, 물러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면 하늘은 우리 편이 되어주지 않을까. 욕심을 내려놓고 내 처지에 맞게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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