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 건축을 죽였는가?
1959년 28살 김수근은 학생신분으로 해방과 전쟁을 극복하려는 대한민국 입법기관인 국회의사당 신축 설계에 당선되었다. 65년이 지난 2024년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때라고 종이로 건축했을 리 만무하고, 국가사업인데 이런 아마추어에게 설계 당선을 준다는 것은 국제적 토픽감이었다.
김수근도 로비로 되었을까?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학생신분에게 국가건축을 디자인하게 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0년대의 건축 법을 보면, 건축사의 개념과 아이디어가 반영될 여지가 많았다. 물론 화재가 나고 건물이 부실 공사로 무너질 때마다 건축 관련 기준과 조항이 늘어났다.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나, 신기하게 이런 내용과 과정이 해외와 다르게 설계기준으로 적용된다. 가장 웃기는 것은 계단 높이를 규정하고 있는대, 국가가 주는 자격인 건축사가 계단 높이를 못 정할까? 친절한 건지 바보취급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설마 계단 단높이를 1미터 할리 만무이지 않은가? 놀라운 것은 이것이 법에 있다는 것이다. 황당할 따름인데 이는 단적인 예로 엄청나게 많은 조항들이 얼기설기 건축 설계에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해외에 가서 “왜 우리는 이런 아파트! 이런 건물! 이런 개발부지가 없을까?”의문을 갖는데 답을 말해준다면 우리나라 건축 법 및 관련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대다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건축사들은 이런 무모한 법을 왜 방치하는 것일까? 그것은 권위와 권력의 중심에 없기 때문이다. 표현이 불편하긴 하지만 사람들의 암묵적 인식에서 그렇다. 이집트 신전이나 고대 그리스 로마 건축을 보면 놀랍게도 디자인한 이들의 실명이 등장한다. 그들이 황제이건, 대제사장이건, 원로원 귀족이건..
우리는 사농공상때문에 건축이 하급계층의 일이라 생각하지만, 조금 결이 다르다. 한량급 양반들도 취미샹활로 건축의 자리와 구성을 요구하고 제시했다. 물론 만드는 행위, 즉 건설은 공이 했을 것이다.
내 글 여러곳에 일본을 언급하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유사한 (?) 행탱하 궤적이 있었기에 비교할 수 밖에 없다.
아주 멍청한 수재급 학자들이 가끔 인곽한계 생략하고 식민지 시대를 묘사하는데, 건축의 새계로 들어오면 우리나라 건축을 백년가까이 뭉개버린 원흉이다. 물론 기술적, 엔지니어적 한계는 오래전에 극복했다. 심ㅈ어 앞선 부븐도 있다.
그러나 백년 가까이 헤매고 있는 부분이 바로 철학과 사유를 바탕으로 표현하는 건축설계부분이다. 여전히 유학을 다녀온 이들이 건축의 주류가 되고, 해외 최신 트랜드가 여전히 주인공이 되는 열등감 쩌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은 백년전 조선인은 건축사로 교육하지 않은 일본의 영향때문이다. 귀족이나 개혁주의자들로 근현대 건축을 주도한 일본의 건축가/ 건축사들은 사회지도층이었다. 그들은 시대의 미래를 토론하고 주장했다. 그 뿌리는 넓고도 깊다. 이에 반해 해방될때까지 건축 보조원으로만 교육이 허용된 조선에서 행방과 근대화의 과정은 철학과 사유의 건축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건설을 위한 바탕이었고, 시대가 흐르니 투자의 대상이 되는 건축이었다. 사유와 철학의 건축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70년이 흘렀다. 이제는 자본의 건축으로 넘어왔다.
이런 바탕이다 보니 본인들의 영역인 건축관련 법과 재도들을 만들고 새우는 이들은 정치인과 행정가다. 여전히 소외되어 있고, 제삼자로 수동적 지위로 사회에 포지션 되어 있다. 아마도 이런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본인들의 삶을 타인이 계획하게 될 것이다.
야마모토 리캔의 발언에 많은 건축가들이 공감의 하트를 보냈지만,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본다면 스스로 목소리 내지못하는 이땅의 건축가들을 질책하는 힐난이기도 하다
김수근의 귀국시보다 결코 지금 환경이 더 좋아짐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