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then one day you find ten years
그리고 어느 날 10년이
Have got behind you
훌쩍 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지.
No one told you when to run, you
아무도 너에게 알려주지 않았어, 언제 달려야 할지를.
Missed the starting gun
너는 출발 신호를 놓쳐버렸지.
'Time' - <The Dark Side of the Moon(1973)>, Pink Floyd
“아무도 너에게 알려주지 않았어, 언제 달려야 할지를. 너는 출발 신호를 놓쳐 버렸지”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인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시간’이라는 곡의 한 구절이다. 고등학생 시절 집 앞에 있는 레코드 가게에 처음으로 LP판을 사러 갔었다. 주인아저씨가 아주 정성을 기울여 두 장의 앨범을 추천해 주셨는데, 그 하나가 바로 이 노래가 실려 있는 1집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다.
째깍째깍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계 초침 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처럼 늘 바빴던 시간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에 바로 기업에 입사하여 나의 전력을 다해 일하고 지켜왔던 내 사회 경력이 단절된 채로 10년이 지나고, 또 여러 해가 더 지났다. 그 이후의 내 시간은 또 그것대로 아름답고 가치 있게 흘러갔다. 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사회 속의 나의 세계와,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 속에서의 나의 세계 양쪽에 여전히 어중간하게 두 발을 걸치고 있는 불안정감 속에서 한참의 시간이 흐르기도 했다. 정체되어 가는 시간 속에서 내가 마치 강가 어느 한 구석에 박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작은 돌멩이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눈부시게 밝은 햇살에 마음이 벅차게 뛰어오를 듯 행복으로 가득한 계절도 여러 해 지나왔고, 눈부시게 밝은 햇살에 모두가 저마다의 기쁨을 즐기는 사이에 나의 슬픔이 햇살 속에서 더 도드라지게 사무쳤던 그런 계절도, 지나왔다. 이제는 온전히 여름을 맞이하는 햇살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마음속 기쁨과 슬픔이 적당히 균형을 맞추었다.
그런데, 문득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구절이 떠오른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졸업 후 사회에 나와 회사에 다니는 동안, 앞으로의 나의 인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줄곧 열심히 살아왔다. 나는 내내 달리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회중시계를 보며 바쁘다는 말을 계속하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달려가는 흰 토끼 와도 같았다. 그러나 완벽을 추구하며 늘 바쁘게 헉헉대며 살아왔던 시간들의 상당 부분은, 실상은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경계선에서, 나를 자책하지 않을 정도의 바로 직전에서 타협하고 포기해 왔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나는 늘 결정적인 순간에 걸음을 멈추고 서성이곤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시작조차 못한 채로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듯이 말이다. 일상의 파도에 밀려 방향의 감각조차 잊고 사는 날들이 너무 많았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나는 계속 길을 잃고 헤매고 있던 걸까? 출발 신호를 놓친 걸까? 하지만 인생은 명쾌하게 시작과 끝이 규칙으로 정해져 있는 육상 경기가 아니다. 언제 달리고, 언제 멈추어야 할지, 결승점이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제 진정한 나만의 출발 신호를 내가 만들고, 나의 방향을 찾아 다시 달려 나가야 하겠다는 바람이 마음 한구석에서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시간이라는 것도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공간, 우리 신경들의 연결 속 기억의 흔적들에 의해 펼쳐진 초원이다. 우리는 기억이다. 우리는 추억이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갈망이다. 기억과 예측을 통해 이런 식으로 펼쳐진 공간이 시간이다. 때로는 고뇌의 근원이지만, 결국은 엄청난 선물이다.’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커버에는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의 스펙트럼이 그려져 있다. 우리가 낮에 보는 백색광에는 무지개 빛깔이 모여 있다. 다양한 파장의 빛들이 모일수록 더 하얗게 빛난다. 어두움 속에서 빛이 더 환하게 드러난다. 내가 지나온 나날도 밝고 어두운 여러 파장의 시간들이 어우러져 있을 터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시간들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총합을 이루고, 그 풍성함은 개별적인 단계에서의 결여를 메꾸어간다.
나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결국은 엄청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