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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패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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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m May 07. 2022

처음1

옷이 뭐길래

 초등학교 4학년, 한 여자 아이가 내게 물었다.



"너는 왜 맨날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



 이 말을 듣기 전까지 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트레이닝복을 자주 입었을 뿐이지 똑같은 옷을 매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사실보다는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교복이 없는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엄마가 골라주는 옷을 입고 갔다. 그러니까, 그 부끄러움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엄마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옷이라는 게 뭔지, 패션을 처음 마주한 기억은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교복이 좋았다. 친구들은 어떻게든 교복 입은 티를 안 내려고 애썼지만, 나는 착실히 잘 입고 다녔다. 남들은 한 번쯤 샀을 법한 브랜드의 패딩이나 후드 집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물론 유행한다고 친구들 따라 바지통을 줄여 입기는 했다. 이것이 나의 '유행'에 전부였다. 이 생각은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같았다. 신발 하나를 정말 1년 내내 신었다. 반스의 회색 올드스쿨이었는데 다 닳아서 찢어질 때까지 신었다. 고등학생 때 입던 니트도 사이즈가 작아질 때까지 입었다. 겉으로는 다들 멀쩡했으니 새로 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특히나 1년 뒤에는 입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옷 같은 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일병쯤 휴가를 나가 동생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년 동안 옷 사는 데만 거의 200만 원은 쓴 거 같아"


믿지 못할 엄마의 말이었지만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동생의 방은 처음 보는 옷들로 가득 차있었다. 고백하자면, 당시의 나는 뭐가 뭔지 몰랐다. 그러니 디테일이 다른 바지여도 내 눈엔 다 비슷해 보였고 같은 검정 재킷이 왜 이렇게나 여러 벌이 있어야 하는지 몰랐다. 군대 간 내 방의 옷걸이까지 꽉 꽉 차 있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휴가를 나갈 때마다 새로운 옷들은 점점 쌓였고 내 전역일도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이 즈음 처음 옷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군대 갔다 온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전역할 때만큼은 "세상아 덤벼라"라는 마인드가 된다. 아무리 군대를 갔다 왔다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20대 초반인 남자에게는 공부만큼이나 외모도 중요했다. 그 때 동생의 옷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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