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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빵 Jul 13. 2021

[리뷰] 드라마 : 3%

훈장을 향하여 경례

*스포 주의

*시즌1에 내용에 대한 약스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너희 중 단 3%만이

외해로 간다

오직 3%만이 누리는 풍족한 사회. 빈곤한 97%가 되지 않으려면 인생에 단 한 번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 누구도 명확한 기준을 알 수 없는 3%이지만 사람들은 다수인 97%가 아닌 3%를 갈망한다. 풍족한 외해로 나가면 평생 돌아오지 못하는데도 외해에서 누리게 될 특권에 사람들은 들뜨고 실패자로 남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 지긋지긋한 가난에 의한 낡은 옷과 부족한 음식, 남들과 똑같은 삶이 싫기 때문이다.




난 누구나 했을 일을 한 거야

너희도 그렇게 할 거라고




세상의 한정된 자원을 모두에게 골고루 주는 게 평등일까. 능력에 따라 차등 분배하는 게 평등일까. 이 드라마에서는 후자를 핵심 주장으로 두고 있다. 외해의 풍족한 자원을 누리면 동시에 외해에서 직업도 부여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직업을 부여받으려면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게 드라마의 기본 논리다. 그래서 평가 대상자들은 말투부터 간절함까지 시험받는다. 말을 더듬거나 너무 시끄러우면 상대에게 어떤 신뢰를 얻지 못하니 탈락이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발전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탈락이다. 다른 무엇보다 외해의 특권에 대한 격한 갈망이 없으면 탈락이다. 평생의 단 한 번인 기회에 참가자들은 목숨을 걸고 참여한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평생의 삶과 목숨을 걸었다. 덕분에 이들을 위해 공정한 진행을 받아 줄 평가자들도 철저하게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도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루카스는 어디 갔어?

걔는 동전이 없었어




그런데 평가자들 역시 이토록 철저하게 준비한 시험 결과가 종종 의문을 낳는다. 분명 상식적으로는 부정행위로 보이는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평가자가 최초에 제시한 조건에만 부합하면 통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너무 무책임한 게 아니냐 볼 수 있는 이 기준의 의미는 사실 간단하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기는 법'을 아는 사람을 합격시키겠다는 것이다. 착함과 생존력은 서로 다른 선상에 놓여 있다. 착한 데다가 이기는 법까지 안다면 좋겠지만 오직 착함과 오직 생존력 중에 고른다면 생존력을 고르겠다는 말이다. 애초에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3%를 차지하기 위한 시험이지 누가 얼마나 착한가를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집중해서 봐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에 단 한 번이라는 극단적 조건을 걸어두긴 했지만 사실 실제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자신의 능력을 선보이며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 영화와 비교해서 더 다양한 분야로 나누어져 평가받지만 직업에 따라 여전히 귀천을 따지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생각하면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풍족함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제대로 치료받으면

다시 걸을 수 있을 거예요




어린 시절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 페르난두는 외해로 나가면 손쉽게 다리를 고칠 수 있다. 평생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한 다리를 고치는 건 97%의 사람들에게는 마법 같은 일이다. 물론 다리를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집과 음식, 옷, 배우자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달콤한 포상이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이제까지의 테스트를 겪으면서 바라본 바로는 3%의 삶은 예측 불가다. 그리고 외해로 떠나면 다시는 부모님은 물론 어쩌면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은 친구, 동생들과도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한정된 자원을 '풍족할 만한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특권'이기에 오직 3%만을 위한 일이다. 그리고 3%는 그걸 누릴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치는 다시 3% 중에서 더 가치 있는 사람이 정한다.




https://youtu.be/8yyzNQfaQR8

https://www.netflix.com/kr/title/80074220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정한 가치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종종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잊어버리곤 한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어렸을 때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답하던 질문들이었는데 어느새인가 사회가 돈이라는 등급을 매기면서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서 어느 수준의 돈이 있어야만 하므로 나는 가치는 재편성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과 이것을 위해 필요한 돈을 모으는 법, 내가 원하는 것과 이것을 위해 필요한 돈의 제공자, 나를 살게 하는 것과 이것을 위해 필요한 돈의 양. 돈을 위해 살아가려던 게 아닌데 돈에 잡아먹힌다. 돈은 누군가의 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명예의 훈장이다. 오늘도 자랑스러운 나의 훈장은 어디로부터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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