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재작년 가을 껜가.친구가 준 케일 씨앗을 서랍에 넣어 두고 까무룩 잊고 있다가서랍 정리를 하다 씨앗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묵은 씬데 싹이 틀까.'
'속는 셈 치고 뿌려보지 뭐.' 하고는 빈 화분에 뿌려뒀다.
씨앗을 보면 무조건 흙에 뿌린다. 2년 전 산책길에 다람쥐 몰래 가져온 도토리도 흙에 묻어 베란다에서 잘 자라고 있다. 겨우내 죽은 것처럼 가지만 있다가 봄 되면 가생이가 토돌토돌 한 잎을 틔운다. 베란다에서 도토리 한 알이 보여주는 계절의 변화는 신기하리만치 감동을 안겨 준다. 이처럼 정확하고 확실한 생체 시계가 또 있을까 싶다.
묵혀서 싹이 틀까싶었는데 그 쓸데없는 기우였다.
씨 뿌린 지 사흘 만에 꼬물꼬물 노란 싹이 흙을 밀고 올라오더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잘도 자란다.
화초를 키우면서 새 잎이나 오랜만에 꽃을 보여주는 식물을 보면 적잖이 감동스럽지만 자디 잔 씨앗이 사흘 만에 싹 틔우는 광경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다.애초에 싹이 틀 거라는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기에 더 감동이다.
베란다에 나가 물도 주면서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슨 대단한 일인양 씨앗 준 친구한테 사진을 찍어 보내고 자랑질을 한다. 화초도 잘 키우고 베란다에서 채소도 잘 키워먹는 친구는 나를 대견?해 하며 그런다.
"잘 했네. 며칠 지나면 맛있는 새싹 비빔밥을 해 먹을 수 있어"
친구 말에 칭찬 받은 아이처럼 기분이 좋다. 새싹비빔밥 이란 말이 솔깃하면서도 맘 한 편으로는 파릇파릇 자라는 텃밭을 상상한다. 텃밭에 케일도 심고, 비트, 당근, 양파도 심음 정말 저 푸른 초원의 싱싱한 식탁이 되겠는데,
땅 한 뙈기도 없으면서 텃밭은 무슨, 혼잣말로 자조 섞인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는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오는 케일싹을보며 즐거운 상상을 한다.
친구 말처럼 한 이틀 더 키워 새싹 비빔밥을 해 먹을 건지
좀 더 키워 줄기가통통해지면 정식해서 키워 볼 것인지,
들여다보고 있으니 야리야리한 떡잎이 대체로 ❤ 를 닮아 있다.하트 잎들이 일제히 창쪽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