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서둘러 산뽀를 했다. 어젯 저녁 일기예보에서비소식을 들었다. 산책은 매일 하고 날씨를 타지 않지만 오늘 아침은 마음이 그랬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것 같다.하루게 다르게 짙어지는 숲의 시간은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말을 무색케 할 만큼 빠르게 흐른다. 삭막한 산 능선에 피어나던 진달래꽃을본 지가 엊그제 같은데숲은 벌써 우화한다. 연두에서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초여름의 풀내를 폴폴 풍긴다.
딸깍딸깍,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산책은 산으로 뽀짝 다가가덤덤한 친구를 만나는 것 같다. 여여하게 걸으며 나무를 보고 새소리를 듣고 나무와 나무 사잇길을 걸어 나와 집으로 오면 그 덤덤한 친구에게 속내를 다 털어 놓고 온 듯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지곤 한다.
그런 순간에 펼쳐 드는 시집 한 권.어느 시인이 그랬다. 시를 찾는 이에게 시는 밖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다고.이런 날에는그런가 싶기도 하다.
시 한 편 읽는데 들이는 시간, 그 안에서숲속을 거닐 듯 누군가의 가만한삶을 짐작해 보는 일 또한산뽀가 아닐까. 시와 시인과 소원했던나와 마주하는시간이기도 하다. 시는 내 삶과는 무관하지 싶다가도어느 순간이렇게시가 주는 여운이 거울처럼 나를 맑힐 때그 안에 더불어 내 삶도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도 한다.
울라브 하우게. 김용택 시인의 어느 강연에서 흘려 들은 시 한구절이 그에게로 가 닿게 했다. 그는 어려서 형제들의 죽음을 직면하고 정신병에 시달려 왔고 그런 그에게 책과 시는 묵묵하고 든든한 친구가 돼 주었다. 그의 인생에서 책과 시가 없었다면 시인에게 삶은 더 지난했을 것이며 그의 외로움은 정신과 육체를 병들게 했을 것이다.
평생을 정원사로 일했고 독학으로 세상 언어를 익혀 시를 쓰고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외부로 드러냈던 올라브 하우게. 그의 시가 내게 의미깊게 와닿는 것은평범한 삶에 자신만의 호흡으로 소소한 이야기를따뜻하고 다정하게풀어 가기 때문이다.
그 강연에서 섬진강 시인이 소개한 하우게의 시 한구절은 지금도 내 귓가를 맴돈다. "눈 오는 날 저녁 정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며 나뭇 가지의 눈을 털어 주" 거나 수확기 과일 나무를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모습은 경건하기 까지 하다. 삶과 노동을 노래했던 성실한 평화주의자하우게의 이 시 또한 마음을 맑힌다.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대양이 아니라 물을 원해요
천국이 아니라 빛을 원해요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 오세요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이처럼 그는 거창한 삶의 목표보다 순간의 작은 진실에 무게를 두는 시인이다. 생전에 정원사로 살았듯이 어쩌면 사후 세상에서도 자연을 숭배하며 농사를 짓고 꽃을 가꾸는 정원사로 이런 시를 쓰고 있지 않을까.
문득, 삶의 모든 것이 길이고 그곳에 노동이 있다고 한 페르난도 페소아의 말을 하우게의 시에 놓아두며 그날이 그날인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감사하며 끝으로 책 뒷표지에 실린 시인 로버트 블라이의 말을 옮겨 놓는다
"하우게는 줄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작은 스푼으로 마치 간호사가 약을 주듯 먹여 준다. 그는 옛날 방식으로 죽었다. 어떤 병증도 없었다. 단지 열흘 동안 먹지 않았다. 슬픔과 감사로 가득했던 장례식은 어린 하우게가 세례 받은 계곡 아래 성당에서 있었다. 말이 끄는 수레가 몸을 싣고 산으로 올라갔다. 작은 망아지가 어미 말과 관을 따라 내내 행복하게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