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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Apr 20. 2024

30  산뽀, 시집, 시인, 시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오직 비 때문에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선 건 아닙니다, 넓은 모자

아래 있으면 안심이 되죠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거기에

조용히 서있던 거지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비를 들으며 날이 어찌 될지

내다보며

기다리며 이해하며,

이 세계도 늙었다고 나무와 나는 생각해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오늘 나는 비를 좀 맞았죠

잎들이 우수수 졌거든요

공기에서 세월 냄새가 나네요

내 머리카락에서도.





 아침에 서둘러 산뽀를 했다. 어젯 저녁 일기예보에서  소식을 들었다. 산책은 매일 하고 날씨를 타지 않지만 오늘   아침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그랬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먹구름 사이로  비가 올 같다.  하루게 다르게 짙어지는 숲의 시간은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말을 무색케 할 만큼 빠르게 흐른다.


삭막한 능선에 피어나던 진달래 꽃을 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숲은 벌써 우화를 준비하는 걸까. 연두는 아주 잠깐 어느 시간 초록 그늘을  끌어다 드리우고 초여름의 풀내를 폴폴 풍긴다.

그 안에서 나는 딸깍딸깍,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서  산책은  산으로 뽀짝 다가가 덤덤하게 묵묵한 친구를 만나는 것 같다.


숲으로 기우는 순간 여여하게 걸으며 나무를 보고  우듬지의 새소리를 들으며 걷고 걷다가 나무와 나무 사잇길을  빠져 나와 집으로  오면 모처럼 친구에게 속내를 다 털어 놓고 온 듯 마음이 홀가분해지곤 한다.


 그런 순간에 펼쳐 드는 시집 한 권.  시집은 겨를을 떠올릴  수 있어 좋다.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시를 찾는 이에게 시는 밖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다고. 산뽀를 다녀 온 날에는 이 말에 밑줄 긋고 싶어진다.

시 한 편 읽는데 들이는 시간, 그 안에서 숲속을 거닐 듯 누군가의 가만한 삶을 짐작 해 보는  또한 산뽀가 아닐까. 시와 시인과 소원했던 나와 마주하 시간이기도 하다. 시는 삶과는 무관하지 싶다가도 어느 순간 이렇게 시가 주는 여운이 거울처럼 나를 맑힐 때 안에 더불어 내 삶도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도 한다.

울라브 하우게. 김용택 시인의 어느 강연에서 흘려 들은 시 한 구절이 그에게로 가 닿게 했다. 그는 어려서 형제들의 죽음을 직면하고 정신병에 시달려 왔고 그런 그에게 책과 시는 묵묵하고 든든한 친구 돼 주었다. 그의 인생에서 책과 시가 없었다면 시인에게 삶은 더 지난했을 것이며 그의 외로움은 정신과 육체를 병들게 했을 것이다.

평생을 정원사로 일했고 독학으로 세상 언어를 익혀 시를 쓰고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외부로 드러냈던 올라브 하우게. 그의 시가 내게 의미깊게 와닿는 것은 평범한 삶에 자신만의 호흡으로  소소한 이야기를 따뜻하고 다정하게 풀어 가기 때문이다.

그 강연에서  섬진강 시인이 소개한 하우게의 시 한구절은 지금도 내 귓가를 맴돈다. "눈 오는 날 저녁 정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며 나뭇 가지의 눈을 털어 주" 거나 수확기 과일 나무를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모습은  경건하기 까지 하다. 삶과 노동을 노래했던 성실한 평화주의자 하우게의  이 시  또한  마음을 맑힌다.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대양이 아니라 물을 원해요

천국이 아니라 빛을 원해요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 오세요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이처럼 그는 거창한 삶의 목표보다 순간의 작은 진실에 무게를 두는 시인이다. 생전에 정원사로 살았듯이 어쩌면  사후 세상에서도 자연을 숭배하며 농사를 짓고 꽃을 가꾸는 정원사로 이런 시를 쓰고 있지 않을까.

문득, 삶의 모든 것이 길이고 그곳에 노동이 있다고 한 페르난도 페소아의 말을 하우게의 시에 놓아두며  그날이 그날인 것 같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감사하며 끝으로 책 뒷표지에 실린 시인 로버트 블라이의 말을 옮겨 놓는다

"하우게는 줄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작은 스푼으로 마치 간호사가 약을 주듯 먹여 준다. 그는 옛날 방식으로 죽었다. 어떤 병증도 없었다. 단지 열흘 동안 먹지 않았다. 슬픔과 감사로 가득했던 장례식은 어린 하우게가 세례 받은 계곡 아래 성당에서 있었다. 말이 끄는 수레가 몸을 싣고 산으로 올라갔다. 작은 망아지가 어미 말과 관을 따라 내내 행복하게 뛰어갔다."


시집에 실린 울라브 하우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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