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의 결혼 조건에 딱 맞았다. 첫째, 나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 둘째, 키가 커야 한다. 셋째, 교대 근무가 아니어야 한다. 결혼 조건이 세 가지가 되니 더 이상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양심은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남편은 나보다 두 살이 많다. 연애는 동갑과 연하도 만났었지만 결혼하자고 하면 헤어졌다. 남편은 키도 크다. 시댁 식구들은 유전자가 특이한지 삼 남매가 출산 시 4kg 이상 우량아로 나왔고 지금도 모두 키가 크다. 시댁에서 나는 난쟁이에 속했다. 울산은 공업도시라 교대 근무가 많다. 그러나 나는 돈보다는 저녁 시간,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분위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혼 후,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공감할 거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애 같은 행동은 똑같고 말귀도 못 알아 들었다. 키가 큰 건 나름 괜찮았다. 높이 있는 것을 꺼낼 때는. 전제 조건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거다. 신혼 때부터 매번 의자를 가져다 짐 정리를 하거나 벽에 못질하는 건 내 몫이었다. 설거지도 한 번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싱크대가 너무 낮아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며 허리가 아프다는 거였다. 교대 근무는? 월급이 천지 차이다. 돈은 같이 벌면 된다고 했을 때 친정엄마가 왜 콧방귀를 뀌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저녁마다 남편의 주문 메뉴를 준비해야 하니 요리에 취미가 없는 나는 스트레스였다. 주말부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했던가 이럴 땐 미리 기도 좀 할 걸 그랬다. 그렇다면 따뜻한 저녁 밥상 분위기는? 개뿔이다. 나와 아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어쩜 말을 잘 자르는지 능력자다. 하루 종일 지낸 본인 이야기나 케케묵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신나 있다. ‘집안에서 막내로 자라서 그런가?’ 관심의 집중은 본인이 되어야 하고,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본인 위주였다. 어떨 땐 세 식구에 아이 치킨과 남편 치킨을 따로 시키거나 아이와 치킨을 먹기로 약속한 날 갑자기 삼겹살이 먹고 싶다며 식당을 다녀와서 치킨을 시켜줄 때도 있다. 시댁 식구들은 이런 남편을 보고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아서 그렇다며 이해하라고 했다. 권위적인 부모 아래서 세 자매의 장녀로 자란 나와 비교하면 정말 상반되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어떡하랴. 내 아이의 아빠였다.
10년을 살아보니 이제는 서로가 눈치도 생기고 참을성이 생겼다. 상대가 예민할 때는 더 하고 싶은 말을 참기도 하고 빨리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결혼 생활의 ‘노하우’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아직은 밉상 남편이지만 살만했다. 남편을 기대고 싶은 오빠가 아니라 첫째 아들로 생각하면 훨씬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의 목표는 졸혼이다. 꿈이 아니라 꼭 이뤄야 하는 목표. 아이가 세 살 무렵 세웠는데 이제 11살이니 9년 남은 거다. 두 자리 수가 어느덧 한 자리 수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짜릿한 순간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
“아이고 우리 남뼌 고땡했어, 배고프지? 어서 와떠 밥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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