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겸 May 02. 2024

100-44 그 남자와의 첫 만남

유아 교사 2월은 무척 바쁜 달이다. 아이들 졸업 행사를 준비함과 동시에 새 학기 입학도 준비해야 한다. 해마다 하는 준비기에 주말과 봄방학 출근은 관례가 되었다. 오늘도 토요일이지만 유치원에 출근해 최종 교실 세팅을 끝내고 자잘한 일거리를 집에 들고 왔다. TV 채널을 뉴스로 맞춰놓고 세상 소식을 들으며 코팅된 이름표에 가위질을 시작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배꼽시계가 허기짐을 알렸다. 나는 작년에 집을 나와 유치원 근처 원룸에서 혼자살이를 시작했다. 매번 늦게 퇴근하고 일찍 출근하는 불편함도 있었고 나이가 드니 엄마와 살며 불필요한 간섭을 받는 것도 싫었다. 세 자매 중 장녀로 두 동생은 결혼했는데 늦게까지 엄마와 사니 모든 관심이 내게 쏠리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냄비에 물을 채워 가스에 올리고 라면을 찾았다. ‘오늘은 어떤 라면을 먹을까?’ 며칠 동안 교실 대청소를 해 피로가 온몸에 들러붙어 여기저기가 찌뿌둥했다. 그렇게 결정한 저녁 메뉴는 김치 라면이다. 김치를 송송 썰고 청양고추를 한 개 넣으면 얼큰한 안줏거리가 된다. 라면이 익을 동안 냉장고에서 시원한 소주 한 병을 꺼내 식탁 위에 세팅을 시작했다. 혼자 살면서 나의 피로 해소 방법은 김치 라면과 소주 한 병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오리다가 만 종이와 코팅지 쪼가리들이 널브러졌고 식탁 위에는 얼큰한 안주가 놓였다. 자동적으로 소주잔에 술을 채워 입안에 털어 넣었다. 

“캬! 시원하다. 역시 소주는 빈속에 마셔야 제맛이지!”

이어 숟가락으로 라면 국물을 한술 떠 목구멍에 넣었다. 

“역시! 이래서 혼자 사는구나!”

엄마가 봤으면 분명 등짝 한 대 맞았을 상황이지만 소확행이 유행하던 시기. 이런 게 소소한 행복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식탁을 치운 후, 다시 테이블에 앉아 가위질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각 물건에 붙여질 이름들이니 한 명당 7개는 만들어야 한다. 그나마 작은 소지품은 라벨지로 대체하니 다행이다. 한 반에 32~3명 정도이니 이것도 며칠 걸리는 일거리다. 무거워진 어깨를 두드려 가며 작업을 할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겸아! 뭐하노? 나와라!”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알게 된 세영 언니였다. 무려 그 인연은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다 되어갔고 나른하기도 해 다음을 기약하려 하니 갑자기 홍가 언니가 전화를 바꿔 받았다.

“야! 빨리 안 나오나? 얼굴 함 보자!”

“으악! 언니! 진짜 오랜만이네요!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홍가 언니는 내가 정말 좋아했었다. 그 시절 22살에 하얀색 코란도를 운전하며 다녔고 커트 머리에 보이쉬한 음성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지금의 연예인을 비교해 본다면 골프선수 박세리와 닮았다. 나는 예전부터 그런 스타일이 너무 좋았다. 일부러 쉰 목소리가 되고 싶어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언니들의 동창 모임이었다. 아직 솔로인 친구들에게 기혼자들이 결혼 못 한 결점을 서로 따지다가 나를 부른 듯했다. 유치원 교사에 멀쩡하게 생긴 나도 결혼 못 한 사람으로 자동 분류되었다. 37살과 35살의 대화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고 가정이 있는 사람은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솔로 5명. 갑자기 홍가 언니가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이런저런 사업을 하는 언니는 항상 바빴다. 

“뭐야? 나더러 나오라고 해놓고 벌써 가면 어떡해?”

“겸아, 진짜 미안. 다음에 또 보자!”

그렇게 나는 홍가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또 아쉬워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4명, 남녀 둘씩 남았지만 솔로 2명과 돌싱 2명이다. 모임의 남은 이야기를 끝내자며 작은 술집으로 이끈 한 남자를 따라 우리 일행은 다시 30분을 흘려보냈다. 

가게에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데려다준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부담스러워 거절했지만 이미 술에 취한 친구들을 먼저 태워야 하니 순차적으로 택시 타기가 밀렸다. 친구들을 일일이 챙기며 택시 기사님께도 특별히 부탁하는 그 남자.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산적같이 생긴 키 큰 남자의 첫인상은 애 둘을 재우고 나온 유부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도 솔로였다.


#남자#솔로#기혼자#동창#모임

작가의 이전글 100-43 엄마들의 모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