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고 있다. 2차 퇴고까지 마친 상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건 아니다'라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내 가슴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더니 그 음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내가 쓰고 있는 책은 20대를 거쳐 40대까지 했던 일에 대해 쓴 이야기이다. 내 이야기를 써서 그런 것일까? 글을 쓰고 나니 내 정체성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태어난 이유는 뭘까? 내 사명은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며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이지?' 고민과 성찰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퇴고를 다시 하고 싶다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미뤄놓고선 그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그것도 모자라 기침감기로 3주째 골골대고 있다. 숨이 안 쉬어질 만큼 연속적인 기침을 해대다 보니 목소리도 쉬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에너지가 바닥난 느낌, 꼼짝도 하기 싫다는 느낌 때문에 마음까지 괴롭다. 이번일을 계기로 건강에 더 신경 써야겠다는 마음도 생겨난다.
드디어 노트북을 꺼냈다. 하얀 백지 속 커서만 외로이 깜빡이고 있다. 초고는 쓰레기라더니 내 초고는 재생불가 폐기물이었다. 고쳐도 고쳐도 계속 손을 대야 했다. 21일 만에 초고를 완성했었다. 41 꼭지의 글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퇴고가 끝이 나질 않는다. 이건 퇴고가 아니라 그냥 새로 쓰는 느낌이다. 앞으로 마감약속일까지 3주가 남았다. 이제는 써야 된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어지러운 와중에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나의 하루를 종이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며칠 쓰다 보니 점차 나를 찾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벅참이 가슴 가득 차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