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 《작가미정》/ 인디한 가사 분석
신인류 - 작가미정
천천히 오가는 대화 속에 남는 단어는 몇 개일까요
구석진 자릴 앉아 커피를 마셔 그대의 일부 식지 않도록
더 이상 내 얘기가 아니었던 황급히 쓰는 결말 끝에서
빼먹은 구절이 또 생각이 나면 그 다정을 어찌 지나칠까요
담담했던 저 하늘 끝으로 내게 왠지 비가 내릴 것 같죠
그대 노곤히 풀린 몸에 맡겨 이내 슬프진 않겠구나
기울인 새벽의 모습 속에 서두른 단어 몇 개일까요
그곳에 존재했던 사랑의 말로 그대의 등장 해치지 않도록
더 이상 내 얘기가 아니었던 모두가 있는 대화 속에서
명백한 결말이 또 내려진다면 그 이유가 어찌 중요할까요
담담했던 저 하늘 끝으로 내게 왠지 비가 내릴 것 같죠
그대 노곤히 풀린 몸에 맡겨 이내 슬프진 않겠구나
이전 글에서, 짝사랑은 한 편의 소설 짓기라 했다. 소설 짓기라면 무릇 마감일이 있기 마련이다. 짝사랑 원고의 마감일은 언제일까? 이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작가미정》의 두 번째 분석을 시작하겠다.
짝사랑은 언젠가 끝난다. 긍정적인 형태로든, 부정적인 형태로든. ¹ 그런데 그 조짐은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상대가 나의 마음을 눈치채고 거리를 둔다든지, 상대가 갑자기 자신의 다른 짝사랑을 내게 고백한다든지 하는 형태로 짝사랑은 그 종결 신호가 맞닥뜨린다.
짝사랑의 종결 자체와는 구별해야 한다. 짝사랑은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짝사랑은 오직 자신만이 종결할 수 있다. 다만 여러 신호의 형태로, 외부로부터 그 종결을 요구받는다.
상대에게서 그런 신호를 발견하고 끝을 직감했다면, 소설 원고의 마감일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빨리 소설을 완성해야 한다.
... 짝사랑의 끝을 직감했는데 왜 그 소설을 마저 완성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이성적인 자의가 아닌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감정적인 마음에서 소설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설 짓기는 그 감정이 사그라들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사실, 짝사랑은 이런 종결 신호를 맞기 전까지 일종의 권태로움을 보인다. 사랑의 상호작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작용은 일방향이고, 그 작용을 본인이 해석하는 것이 짝사랑이기에, 자연히 권태로워지고 시간이 지나면 이는, 실제의 아마추어 소설 짓기처럼 일종의 여가가 된다.
종결 신호를 맞으면 다르다. 잠에서 확 깨어나듯, 짝사랑하는 이는 권태에서 벗어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때는 미처 소중한지 몰랐었다'라고 말하듯, 짝사랑하는 이는 그 종결 신호를 맞고 더욱 맹렬히 증거를 찾고 의미를 부여한다. 종결이 아무리 확정적이라도 말이다. 미련이다. 이제 작품으로 돌아가자.
이런 상황에서의 화자의 심정과 행동이 작품의 다음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더 이상 내 얘기가 아니었던 황급히 쓰는 결말 끝에서
빼먹은 구절이 또 생각이 나면 그 다정을 어찌 지나칠까요
언젠가, 화자는 짝사랑의 종결 신호를 받았다. 이제는 거의 확실하다. 그대의 사랑은 내 것이 아니고, 이 소설은 곧 허구의 가설로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 소설의 결말을 화자는 황급히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화자는 상대의 무엇도 놓칠 수 없다.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마무리하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따금씩, 예전에 자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상대의 행동을 추가로 해석하게 된다. 해석이 틀린 것인지, 아니면 그때는 내게 감정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해석은 더 이상 의미 없다. 그러나 내가 아직 짝사랑을 하고 있는 한 이런 상대의 다정을 어찌 지나치겠는가?
기울인 새벽의 모습 속에 서두른 단어 몇 개일까요
그곳에 존재했던 사랑의 말로 그대의 등장 해치지 않도록
기울인 새벽, 정말 분석의 여지가 많지만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늦은 밤 술을 기울이다 보면 자신의 목도 점점 내 어깨로 기울어지지 않던가. 그런 화자가 보는 것은 기울인 새벽의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단어의 어미와도 디테일하게 어울린다. 작품에서 사용한 단어가 (화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기울어진 새벽이 아니라 (화자의 의도로) 기울인 새벽이라는 점이 분석의 설득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 기울인 새벽의 모습 속에서 화자는 단어를 서두르고 있다. 자신이 쓴 소설 내 그대가 등장하는 부분들에서, 혹시나 사랑의 말들이, 자신의 사심이 듬뿍 들어간 문장들이 그대의 등장을 해칠까 염려하며 단어를 지우거나 고치는 화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작품에서는 이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소설 짓기라는 관점에서 짝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작품의 전제를 이해한 후 이 글을 작성할 때까지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마지막으로 분석을 맺겠다. 바로 이 작품의 제목이 왜 《작가미정》 인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왜 본 작품의 제목은 《작가미정》일까? 이것은 화자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에서 본인의 짝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이미 화자 본인으로 정해진 것 아닌가? 따라서 작품 제목은 '주인공 미정' 같은 것이어야 하는 거 아닐까?
나의 분석은 이렇다. 화자는 자신의 '작품'에서 차마 사랑하는 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상실시키지 못하고 그 대신 자신의 자리를 비운 것이다. 나는 본 작품의 제목이 짝사랑의 마지막을 가장 슬프게,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보다 직접적이고 우아한 방식으로, 내 사랑을 당신에게 다 주고 떠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담담했던 저 하늘 끝으로 내게 왠지 비가 내릴 것 같죠
그대 노곤히 풀린 몸에 맡겨 이내 슬프진 않겠구나
짝사랑은 끝났고, 책은 완성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끝을 직감한 사랑이었고, 마침내 외부로부터 종결을 요구받은 후에도 하늘은 애써 맑았었지만, 이제 여기를 떠나면 내겐 한동안 비가 내릴 것 같다.
소설은 짝사랑했던 그대에게 바쳤다. 그런데, 혹시 이 소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기억하는가? 3. 짝사랑은 한 편의 소설 짓기 (1)에서 전술하였듯, '그대의 일부'를 직조해 만들어졌다. 즉 이 소설은 화자에게 '그대의 일부를 모아 완성한 또 다른 그대'와 다름없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을 자신이 완성한 그대에게 얼마간 맡기려 한다. 이내 슬프진 않을 것이다.
¹ 이 글에서는 작품의 주제로 볼 수 있는 '부정적인 종결' 만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