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F(Key Success Factor)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두 명의 신입 사원이 있다. 같은 대학 같은 과 출신인 이들 중 한 명은 스타트업에 취업을 하였다. 또 다른 한 명은 대기업에 입사하였다. 1년 후 둘은 오랜만에 맥줏집에서 만났다. 각자가 경험한 회사 생활을 영웅담처럼 쏟아 냈다. 분명 돈은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가 더 많이 버는데, 대기업을 다니는 친구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친구가 멋져 보였다. 자신의 팀장님이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을 했다고 하질 않나, 임원들이 할 만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였다고 하질 않나, 업체와 연락을 하여 미팅을 주관하기도 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였다. 얼마 전 자신은 보고서의 한 챕터의 소제목 하나를 맡아 작성하다 사수에게 엄청나게 욕먹을 것을 생각하니,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마냥 멋져 보였다.
스타트업에서는 한 직원이 담당하는 업무의 spectrum이 넓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성장한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자신도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내가 만난 스타트업 직원 중 정말 일을 잘한다고 느낀 직원들은 몇 안 됐다.
스타트업에서는 도제식으로 교육하거나 개인이 스스로 학습해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제안서를 작성해야 한다면 선배가 이전에 작성한 제안서를 보며 benchmark 해 나간다. 논리적 흐름이나 구조를 모방한다. 심지어 글의 어투도 따라 한다. 이렇게 하면 외형적으로는 그럴싸한 모습이 갖추어진다. 그래서 언뜻 보기엔 제안서를 작성한 작성자는 이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자신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스타트업 직원이 보고서 작성하고 있다. 작성자는 이 보고서를 왜 써야 하는지,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논리적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정말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했다. 단순히 형식만 맞추거나 그럴싸해 보이는 표 몇 개를 넣었다고 전문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수립한 논리에 반론이 있을 수 없는지, 만약 반론이 있다면 어떻게 방어하면 되는지도 고려해 봐야 한다. 하지만 작성자는 이렇게 깊이 있는 고민을 해 보지 않았다. 아무도 그러한 고민을 해 봐야 한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연습해 보지도 못했다. 그런 제도적 장치나 여유가 있는 선배들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스타트업들과 일을 하며 메일 하나를 정확하게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봤고, 보고서 1장을 작성하는 것도 예시 없이는 못 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우선 첫째는 앞서 말했다시피 어깨너머 배우거나 스스로 학습해 나가야 하는 문화 때문이다. 때로는 리소스 부족으로 불가피한 관행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둘째는 설령 누가 가르친다고 한들 가르치는 사람이 실력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다른 이유는 스타트업에서는 아무래도 이직이 잦기 때문에 전문성을 쌓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하는 게 맞을까? 적어도 일을 잘하기 위한 고민은 해야 한다. 메일을 하나 쓰더라도 어떠한 문제 때문에 이 메일을 쓰는 것이고, 전달해야 하는 메세지의 핵심이 무엇인지, 메일을 읽은 사람은 어떤 action을 취해야 하는지 정도는 고민하며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 KSF를 이용하는 것이다. Key Success Factor는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의 성공하게 하기 위한 요인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생각해 보고 나열하는 것이다. 이메일을 하나 쓸 때도,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어떤 전략을 짤 때도 KSF 만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스타트업 환경에서도 진짜 성장이라는 것을 해 나갈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쓸 때 만든 KSF는 이렇다. 1) 글의 논리적 연결성이 충분한지를 KSF 1번으로 세웠고, 다 쓴 후 문단별 주제들을 연결해 보았다. 2번 정도 읽어가면 수정을 하니 적어도 논리적 연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확실하게 전달되고 있는지? 를 KSF 2번으로 정했다. 나는 “스타트업과 같은 척박한 교육 환경에서도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건 다 젖혀두고라도 KSF 만큼은 생각해 보자”라는 주제를 설정하였다. Target 독자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관리자들, 또는 스타트업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정의하였다. 3) 맞춤법은 정확한지가 KSF 3번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종종 맞춤법이 틀려 창피했던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있는 KSF이다. 그래서 인쿠르트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기에 내 글을 복사해서 맞춤법을 검사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거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분명 스타트업에서는 배울 기회는 널려 있다. 다만 배우는 환경이 척박할 뿐이다. 과일을 너무나도 많은 숲인데 숲이 너무 험악한 느낌이다. 그래도 과일을 따기 위해 반드시 지키고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하고 그에 따라 실행해 본다면, 다른 어떤 곳보다도 더 많은 과일을 딸 수 있는 곳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회사 다닐 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고 고민하지 말고, 일을 잘하려고 고민해야 한다.”
작사 소개와 스타트업 중독 소개
대학에서는 이공계 학과를 졸업 후 글로벌 컨설팅 펌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MBA 진학 후, 미국의 대형 Tech 회사에서 horizon2 라는 스타트업 발굴 및 M&A 업무를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글로벌 Accelerator에서 미국, 싱가포르, 한국 스타트업들에게 자문하는 역할을 하며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현재는 한국에서 스타트업 자문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스타트업과 관련된 참 많은 일을 그간 해 왔다. 잘못된 스타트업 문화를 꼬집고 내가 생각하는 건전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고민해 보고자 나는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