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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Apr 11. 2024

방황하는 “사유”

종교에 대한 고찰

 “나는 무엇이고, 왜 태어났을까? 내가 죽고 나면 세상은 어떻게 되고,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 1이 되면서 생각이 자랐는지 오로지 노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저는 삶에 대한 생각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말 수도 줄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위안을 주었던 건 CCM이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엎드려 소리 없이 울었네.

 내게 남은 건 알 수 없는 공허함뿐

                                   -ccm <어두운 방 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습관처럼 다녔던 교회의 음악들이 저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매주 들었던 성경의 구절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말씀들이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세상에 대한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갈증을 채워 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신앙적인 부분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중, 고등학생 시절 저의 많은 시간을 자타 공인, 교회와 함께 했습니다. 교회 학생회장, 찬양 인도, 학년 분반장, 기독교 중창단, 찬양집회, 학교 축제 등 추억 속의 빛나는 순간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신앙도 무뎌졌습니다. 십자가의 세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가로는 사람들과 나와의 관계라고 합니다. 저는 그 관계에 회의적이었습니다. 평소 신앙인이 저래도 되나 싶었던 사람들도, 교회에서는 집사라 신실한 척하며, 방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성경 구절에 성령에 감화받아 권능은 받은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예언했었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 시늉을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신앙이 깊다며 보여 주기의 방언 기도를 하는 모습에 위선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7-


  그때, 저는 제가 도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거나 체험하지 않으면,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거리감이 생기니 환경을 핑계로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생업을 핑계로 교회를 안 다니시던 아버지께서는 권사가 되어 교회에 헌신하며, 항상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있습니다. 젊었을 적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더 안쓰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에는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신앙을 존중하지만, 저에게 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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