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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하러 갔더니 선이 없다?"…美 전역 휩쓴 사건

by 뉴오토포스트

조직적 범죄 기승
도둑 잡는 신기술 등장
충전 속도보다 중요한 건…


전기차 운전자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은 언제일까? 주행 가능 거리가 0km를 향해가는 시점에, 간신히 도착한 충전소가 고장 나 있거나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일 때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전역에서는 이 공포가 현실이 되고 있다. 고장이 나서가 아니라, 충전기에 달려 있어야 할 두툼한 충전 케이블이 감쪽같이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8099_11391_2634.png 사진 출처 = instavolt

미국 전역의 전기차 충전소가 ‘구리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되어 초토화되고 있다. 초기에는 단순히 전기차를 싫어하는 ‘안티 세력’의 소행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돈냄새를 맡은 전문 절도 조직들이 활개 치는 심각한 범죄로 변질되었다. 충전 인프라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급기야 항공기 소재와 ‘염료 폭탄’까지 동원된 충격적인 보안 기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테슬라도 당했다…‘돈’ 노린 범죄

Electrify-Canada-Hope-BC-vandalized.jpg 사진 출처 = Tesla

사태의 심각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에는 일론 머스크가 싫어서, 혹은 환경 규제에 반대해서 충전소를 파손하는 ‘반달리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의 양상은 180도 다르다. 범인들은 전동 절단기를 들고 나타나, 불과 10여 초 만에 충전 케이블을 싹둑 잘라 사라진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케이블 속에 들어있는 ‘구리’다. 전기차 고속 충전을 위해 케이블 내부에는 굵직한 구리선이 가득 차 있는데,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구리 가격이 치솟자 충전소가 도둑들의 ‘노다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테슬라 슈퍼차저 충전소에서는 하룻밤 사이 10기 이상의 충전기 케이블이 모조리 절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단순한 좀도둑의 소행이 아닌,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기업형 절도’임을 시사한다. 충전소 운영 업체들은 케이블 교체 비용으로만 수천 달러를 날리는 것은 물론, 충전 불가로 인한 고객 신뢰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전기차 시대의 가장 큰 적은 배터리 기술이 아니라, 구리 도둑”이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항공기 소재로 막는다…‘절단 불가’ 케이블의 등장

G1DdHU0XMAACYUe.jpg 사진 출처 = instavolt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충전소 업계도 반격에 나섰다. 더 이상 CCTV나 경고 문구만으로는 이들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물리적으로 절단이 불가능한 ‘방패’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도난 방지 기술 전문 업체 ‘캣스트랩’이 선보인 ‘EV 케이블 쉴드’가 그 주인공이다. 이 제품의 원리는 간단하지만 강력하다. 기존의 말랑말랑한 고무 피복 대신,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과 항공기에 사용되는 특수 강철 와이어를 겹겹이 둘러 케이블을 감싸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절단기나 톱으로는 흠집조차 내기 힘들며, 전동 공구를 사용하더라도 절단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소음이 발생하도록 설계되었다. ‘10초 컷’을 노리는 도둑들에게 ‘시간’을 뺏는 것만큼 치명적인 방어책은 없다. 실제로 이 쉴드를 도입한 충전소들은 절단 시도가 있었음에도 케이블 방어에 성공한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자르면 터진다…도둑 잡는 ‘염료 폭탄’

INSTAVOLT-CHARGING-POINT.jpg 사진 출처 = instavolt

하지만 물리적 방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하에, 도둑들에게 씻을 수 없는 표식을 남기는 충격적인 기술까지 등장했다. 바로 옵션으로 제공되는 ‘다이디펜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은 마치 은행 강도를 잡는 잉크 팩과 유사하다. 범인이 케이블 쉴드를 뚫고 내부를 절단하려는 순간, 압축되어 있던 특수 파란색 염료가 고압으로 분사된다. 이 염료는 범인의 얼굴과 옷, 그리고 범행 도구에 묻게 되는데, 며칠 동안 지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외선(UV) 조명을 비추면 선명하게 빛나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자르는 순간 너는 범죄자가 된다”는 강력한 심리적 경고이자, 실제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다. 업체 측은 “다이디펜더 시스템을 설치한 충전소에서는 현재까지 절단 피해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그 효과를 입증했다. 케이블 하나를 지키기 위해 염료 폭탄까지 설치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지만, 그만큼 인프라 보호가 절실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충전 속도만큼 중요한 보안, 인프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Smashed-Superchargers-2.jpeg 사진 출처 = Reddit

미국 전역을 휩쓴 ‘구리 사냥꾼’ 사태는 전기차 인프라 확장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10분 만에 완충되는 초고속 충전 기술이 개발되어도, 정작 충전할 케이블이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경쟁력은 단순히 ‘속도’와 ‘보급 대수’에만 있지 않다. 범죄로부터 시설을 보호하고, 사용자가 언제든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보안 설계’와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강철 갑옷을 입고 염료 폭탄을 품은 충전 케이블의 등장은, 전기차 시대가 정착하기 위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험난한 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과 보안 기술의 진화 역시 시급한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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