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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혜 Starlet Sep 05. 2023

통역사의 영어 인생기3(바이블컬리지)

언어를 잘하려면 유학을 꼭 가야 하나요?


‘영어 잘하려면 무리해서라도 유학은 꼭 가야 해’ 하는 말을 듣고 싶은 학생들, 그리고 등골 빠지는 부모님들이 내게 참 많이 물어오던 질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유학 가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하지만,  20살부터 영국에서 3년 반, 29부터 미국에서 6년 반 유학 및 직장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유학은 영어고수가 되는 데 있어서 절대 필수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한국을 벗어나지 않고 사시는 분들 중에 잘못된 영어 공부 방식 때문에, 혹은 동기 부여가 적었기 때문에, 해외에 나갔다 온 친구들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반대로 해외에 나가서 영어를 좀 해본 경험이 자신감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이 있다.


또한 나의 경우에도, 유학생활을 통해 영어가 내 삶의 무기이자 재산이 되었다. 그냥, 영어를 좀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에서 영어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되는 터닝포인트를 유학 당시 찾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학은 결코 정답이 될 수 없으며, 때로는 오히려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유학을 가는 분들은 어렴풋이, 영어에 많이 노출이 되겠지, 영어 대화를 하다 보면 많이 늘겠지 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데, 이 전제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단 하나의 장점은 살기 위해서는 언어를 해야 하니 동기 부여가 된다는 것이고, 라디오만, 티비만 켜도 영어가 들리니,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동기만 확실하고, 적극적으로 영어에 자신의 귀와 눈을 노출시킨다면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영어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수많은 순수 국내파 영어 학습자들 중 끝내주게 영어를 구사하는 분이 매우 많다는 것도 유학이 필수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한다.


20년 전, 내가 유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등록했던 영국의 바이블 컬리지는 전체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값싼 등록금, 그리고 그에 반해 훌륭한 신앙훈련이 한국의 목사 지망생이나, 기독교인 학생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도 영국의 웨일스 시골 마을에 꽁 박혀 있던 100년 묵어 쓰러져가는 컬리지를 찾아낸 한국인들의 열정이 대단한 것 같다



당시 학생 대부분은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숫적으로 한국인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보니 당연히 나도 한국인들과 어울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안에 내 영어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외국인보다 한국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비결은 세 가지.


첫째, 친한 한국인 언니와 늘 영어로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언니와는 연애 문제부터 삶에 대한 깊은 고민까지 나누게 되었는데,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영어로 서로 대화를 했다. 비록 좀 짧은 영어라도.


그 효과는 아주 놀라웠다.

오히려 외국인과 어울려 지내는 것보다 훨씬 심도 있게 언어가 향상되었다. 네이티브들의 경우, 아무래도 더듬거리는 외국인들의 영어를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외국인들과 공통의 주제로 깊이 있게 논의를 하기에는 한국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발화할 수 있는 훈련이 안 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냥 어제 뭐했니 라는 단순한 수박 겉핥기 얘기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제법 오래 외국생활을 한 친구도 영어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것은 어려워하기도 한다. 그저 가벼운 small talk만 늘 뿐.


반면, 한국인 혹은 영어를 배우는 비영어권의 외국인들과 친구가 되어 대화를 하면, 서로 네 살 아이마냥 단순한 영어로 오랫동안 생각을 나누고 기다려줄 수 있어서 훨씬 다양하게 그리고 길게 영어로 말할 기회가 생긴다.

 

두 번째 비결은 영어 일기 쓰기이다. 외국인과 대화를 하다 보면 깊은 이야기의 주제는 결국 ‘나’로 귀결된다. 재미있었던 내 삶의 에피소드, 슬펐던 사건, 어린 시절의 모습, 내 고향은 어떤 곳인지, 내 가족은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인지, 내 나라는 어떤 곳인지, 내 감정은 오늘 어떤지,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즐겨봤던 영화는 무엇인지, 인생의 묵직한 이런저런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지 등등.


영어일기 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영어 그 자체의 향상 이전에, 내 이야기보따리를 정리하고 준비하는 데 있다. 영어를 잘 못하니 그냥 경청하는 것도 좋지만, 진정한 경청이란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그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와 내면도 꺼내놓는 것이다. 그 주거니 받거니 한 번에 관계도 깊어진다.


한국인들의 경우, 공부와 경쟁에 치어 자신의 성격에 대해,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세상사에 대한 분명한 자신의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공통의 주제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대화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탐구하는 식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그럴 때, 결국 하게 되는 얘기들은 전술했듯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한토막 한 토막의 이야기들을 나의 쉬운 언어로 하나씩 짧게 정리해두었다가,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할 때 써보다 보면 어느새 영어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가 많이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키는 한번 적은 글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말해보고, 잘 안된 부분은 다른 날 같은 주제로 다시 적어보고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주제와 내 삶의 흐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뿐 아니라, 이야기의 패턴과 포맷을 만드는 기본 영어 골격을 습득하게 된다.


혹 용기가 없어 내 일기장에 적은 에피소드들을 누군가에게 당장 전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그 에피소드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일기의 주제는 내 삶의 다양한 에피소드 등이 가장 좋은데, 또 하나 내가 오늘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나누고 싶었는데 나누지 못한 말, 혹은 엉망으로 나눠서 상대가 못 알아들은 내용 등을 적어보는 것도 좋다. 자신이 어디에서 막혀서 말을 뱉지 못했는지를 파악하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영어 글 소리 내어 읽기이다. 반복하면 더욱 좋지만 지루하다면 앞으로 나아가도 좋다. 천천히 의미를 음미하며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내 소리를 내 귀로 들으면서 발음 교정도 일부 되고, 문장 자체가 남지는 않아도 문장의 반복되는 틀이 머릿속에 쌓인다. 정확한 원리는 알지 못하지만, 내 주변에 순수 국내파 중 영어를 제법 유창하게 (자신의 생각을 조금 느리더라도 잘 피력할 수 있는 사람들) 하는 분들의 표본을 두고 봤을 때, 영어 책 소리 내어 읽기를  통해 영어의 득음을 하는 비율이 매우 높기도 하고, 나 스스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쓰고 있는 방법이라 꼭 추천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이 세 가지 비결 모두 국내에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해외에 나가 있더라도 꼭 습관처럼 익혀야 할 자세다. 따라서, ‘성인이 영어를 잘하려면 꼭 외국 유학을 가야 하나요?’에 대한 나의 대답은 확고한 ‘N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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